[북한 어린이를 돕자] 下. 식량난 최대 피해자는 어린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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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계속 방치하면 아마 한 세대가 사라질지 모릅니다. "

세계식량계획(WFP)의 존 파월 아시아지역 담당 국장은 지난해 5월 재미(在美) 한국청년연합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 어린이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로부터 8개월이 경과한 지난 7일 WFP 제네바 사무소의 크리스티안 베르티옴 대변인은 "현재까지 확보된 대북 식량 지원분은 3만5천t에 불과하며, 이는 올해 1분기 소요량의 3분의1도 안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사회의 신규 지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린이와 임산부, 젖을 먹이는 산모 등 취약 계층이 혹한기에 식량배급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WFP의 식량 지원을 받은 북한 주민은 2001년 6백40만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 지원이 크게 감소하면서 3백40만명으로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본 대상은 북한 어린이들이었다. 지난해 9월부터 북한 서부지역 소(초등)학생 약 1백만명이 식량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을 비롯해 10월에는 46만명의 유치원 어린이, 11월부터는 92만명의 탁아소 어린이들이 식량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 배경에 대해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金亨錫)사무총장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실태가 속속 알려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곳에 몰리게 된 데다, 1995년 이후 수년간 지속된 대북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누적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미국과 일본이 북한의 핵 개발 시도와 일본인 납치 문제 등 정치적 이유를 내세워 대북 식량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한 것도 한몫했다. 미국 정부는 대북 식량 지원을 2001년 30만t에서 지난해에는 15만5천t으로 줄였다.

게다가 지난 2일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정치적 이유로 대북 식량 지원을 줄이거나 중단하지는 않겠다"고 말했지만, 식량배급 지역에 대한 국제감시단의 자유로운 접근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워 식량 지원을 보류하고 있다. 또 2000년까지 모두 50만t의 식량을 지원해 온 일본도 지난해부터 대북 식량 지원을 중단한 상태다.

그 결과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은 95년 5천6백만달러에서 ▶96년 9천8백만달러 ▶98년 3억달러 ▶99년 3억6천만달러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2000년엔 1억8천만달러로 대폭 감소됐다.

문제는 국제사회의 대북 지원 감소가 북한 어린이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WFP가 그동안 지원해 온 6백40만명의 북한 주민 가운데 어린이가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는 4백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현재 북한 어린이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분유.이유식.라면.빵 등 가공식품, 비타민.항생제.백신.결핵약 등 기초의약품과 의류 등이다. '북한 어린이 돕기 2003 운동본부'(운영위원장 정희경.청강문화산업대 이사장) 측에 따르면 1인당 2천원이면 북한 어린이 1명에게 종합비타민 1백정을, 1천원이면 겨울용 양말 네 켤레를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숙명여대 총동문회 정정애(鄭晶愛)회장은 "굶주린 어린이는 정치를 모른다"며 "북한 어린이들을 돕는 것은 체제와는 상관없이 우리의 미래를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 어린이 돕기'가 보다 뜻있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남한 어린이들이 함께 정성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 매우 높다. 한양대 정병호(鄭炳浩.문화인류학)교수는 "남한 어린이들이 북한 어린이들을 단순한 구호의 대상이 아니라 언젠가 만나서 함께 살아갈 친구로서 생각하고, 서로 교류하며 돕고자 하는 마음을 키울 수 있는 문화적 훈련이 바로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기업의 적극적인 호응이라는 게 운영본부 측의 진단이다. 민간 차원의 대북 지원은 99년 1천9백만달러, 2000년 3천5백만달러에서 지난해에는 6천5백만달러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모금액의 대부분이 비정부기구(NGO)가 주도, 이에 사회.종교단체 등이 호응하는 형태이고, 일반 기업의 참여는 크게 눈에 띄지 않고 있다.

金총장은 "그동안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 활동은 우리 국민에게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지원 규모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며 "앞으로 기업들이 북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적극 참여한다면 머지않아 북녘땅에서 어린이들의 기아와 질병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leehido@joongang.co.kr
사진제공=유엔아동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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