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첫사랑의 동생과 결혼한 모차르트 그 이면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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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빠진 음악회는 상상할 수 없었던 시대. 모차르트의 연주여행에는 가수와 동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의 나이 22세 때 네덜란드에서 온 오라니에 공비를 방문해 음악회를 열기 위해 마차에 동승한 가수인 베버 가문의 둘째 딸 18세 소녀 알로이지아(사진)와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의 반대로 그녀의 곁을 잠시 떠나기 직전에 열린 이별 콘서트에서 알로이지아는 모차르트의 ‘3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K.242’의 제2 피아노를 연주했고 모차르트는 그녀를 위해 ‘어디서 왔는지도 모른다네, K,249’의 아리아를 불러 갈채를 받았으며 알로이지아는 자신이 손수 짠 장갑을 선물하는 등 그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사랑은 진행형이었다. “내가 떠날 때는 모두 울었습니다. 나도 그때를 떠올리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 같은 심정을 편지를 통해 남긴 모차르트가 불과 반 년 남짓한 파리생활을 접고 잘츠부르크로 되돌아왔을 때 알로이지아는 그를 쌀쌀맞게 대했고 결국 모차르트 대신에 궁정가수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이에 밝은 그녀의 어머니 베버 부인은 죽은 남편의 빚을 대신 갚아주고 거액의 돈과 더불어 매년 생활비를 받는 조건으로 딸을 사실상 팔아 넘겼다.

모차르트의 첫사랑 알로이지아를 통해 얻은 재산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자택을 개조해 하숙집을 만들었는데 이는 독신남을 끌어들여 남은 딸들을 하나씩 해치우려는 의도였다. 여기에 처음으로 걸려든 것이 바로 모차르트였으니 그가 많은 하숙집을 제쳐두고 그 곳을 택한 것은 어쩌면 알로이지아에게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미련이 아니었을까.

알로이지아의 바로 아래 동생인 콘스탄체와 염문에 빠지자 베버 부인의 책략임을 눈치챈 아버지는 극구 반대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약간의 불장난에 빠졌을 뿐이었던 그는 베버 부인의 의도에 휘말려 콘스탄체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사람에게 ‘향후 3년 내에 콘스탄체와 결혼할 것을 맹세하고 이를 어길 경우 매 년 위약금을 지불하겠다’는 계약서를 써주고 말았다. 낭비벽이 많고 변덕이 심해 기분이 좋을 때는 온천에서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가 하면 우울할 땐 자살을 기도하는 등 겉잡을 수 없는 여자였던 콘스탄체와의 9년간의 결혼생활에서 여섯 명의 자녀를 두었으나 넷은 일찍 죽었고 모차르트가 죽을 때까지 살아 남았던 두 아들 중 누구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음악사에 길이 남을 훌륭한 음악가가 되지는 못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이 결코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모차르트는 200여 년 전에 증명한 셈이다.

작년 9월에 개봉했으나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영화 ‘나넬 모차르트’는 열 살 전후의 모차르트가 그의 아버지, 어머니, 누나(나넬 모차르트)와 함께 마차를 타고 유럽 전역과 영국을 넘나드는 순회공연을 소재로 하고 있다. 모차르트와 그의 친누나 나넬 모차르트가 단지 반주자나 솔로가수로서 공연을 돕는 정도가 아니라 남녀간의 사랑문제까지 대화의 주제로 삼는 사이였다면 모차르트의 결혼 상대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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