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밖에서는 “공약 수정 필요” 인수위는 “국민 혼란시키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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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인수위원장이 17일 서울 삼청동 인수위에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경빈 기자]

약속을 지키느냐, 현실을 고려하느냐.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 공약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기초연금, 4대 중증 질환 100% 보장 등 복지 공약을 놓고 보건복지부와 국책연구기관, 심지어 새누리당 지도부에서조차 공약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어서다. 그렇다고 공약을 뒤집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박 당선인이 ‘약속과 신뢰’를 앞세워온 데다 “공약을 발표할 때 그것을 만든 분들이 피곤할 정도로 따지고 또 따졌다”며 자신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인수위는 일단 지키는 쪽을 택했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은 17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새 정부가 시작도 되기 전, 인수위의 인수 작업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성을 다해 만든 공약에 대해 ‘지키지 말아라’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국민을 혼란스럽게 하고,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인수위가 ‘출구전략’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잇따르자 직접 해명에 나선 것이다. “박 당선인이 공약 실천 의지를 재차 강조한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다. 인수위가 정부 업무보고를 17일 끝내고 새 정부의 로드맵 작성에 들어갔지만 조 단위의 재원이 투입되는 복지 정책은 난제로 남아 있다. 65세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의 경우 한 해 필요한 7조원의 30%인 2조1000억원을 국민연금에서 조달하고 나머지는 국가 예산으로 메우는 방법이 검토되고 있다. <본지 1월 11일자 1, 3면>

 이 소식이 알려지자 세대 갈등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40년 뒤면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노년층을 위해 청년층에게 부담을 지우는 정책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 토론회에선 “기초연금, 4대 중증 질환 100% 보장, 기초생활보장 확대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 4년간 새누리당이 추계한 34조4954억원보다 43조원이 더 많은 77조5511억원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자 “공약을 지키려면 증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인수위 측은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여전히 ‘복지 재원을 60%는 비과세·감면 축소와 정부지출 효율화로, 40%는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원 발굴로 마련한다’는 박 당선인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공약 지키기와 현실 사이에서 빚어지는 대통령의 고민은 되풀이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핵심 공약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반도 대운하사업(이명박)과 행정수도 이전(노무현)이 대표적이다. 이 공약들은 각각 4대 강 사업과 세종시 건설로 수정됐지만 이 과정에서 사회적 혼란과 국론 분열을 불렀다.

 국민대 홍성걸(행정학) 교수는 “인구 고령화로 시간이 갈수록 기초연금 대상자와 4대 중증질환 환자는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이라며 “공약을 신중하게 만들었더라도 정부가 가진 데이터와 전문성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재정의 감당 능력을 고려해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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