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원회 공화국’ MB도 못 바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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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에는 ‘바이오안정성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유전자 변형 생물체의 수출입에 관한 사항’ 심의. 위원 면면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김황식 총리가 위원장을 맡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등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한다. 위원 중 장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는 9명이나 된다.

 그런데 이 위원회는 지난해 한 번도 회의를 연 적이 없다. 2011년도 마찬가지다. 회의 실적은 3년 전 위원회가 처음 구성될 때 단 한 번 모였다 헤어진 것이 전부다. 정부 관계자는 “장관들 중엔 자기가 위원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 위원회를 없애지 못한다.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어려운 것이 위원회의 속성. 특히 법률에 근거를 둔 위원회는 법을 고치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법을 고치더라도 책임지기를 꺼리는 공무원의 성격상 폐지보다는 보완을 선택하기 쉽다. 바이오안정성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이 위원회를 없애는 대신 정부가 내놓은 대안은 위원회의 격을 낮추는 것이었다. 지식경제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는 내용의 법률 개정안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통과됐고, 오는 12월 시행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499개 위원회 가운데 156개는 단 한 번도 위원들이 출석하는 회의를 열지 않은 ‘휴면 위원회’였다. 이 중 45개는 문서상으로만 회의를 열었고 나머지 111개는 아무런 활동이 없었다. 지난해 6월에는 정부위원회 수가 더 늘어 505개에 달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난립하고 있는 정부위원회에 대한 구조조정을 검토 중이다. 1차 발표에는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면서 기존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없애고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미래창조과학부 소속으로 변경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은 지난 15일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개하면서 “정부위원회 문제는 조만간 정리해서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얼마나 강한 의지를 갖고 위원회 정비를 추진하느냐다. 당선인의 공약에는 ‘국민대타협위원회’ ‘긴급조치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 등을 새로 만들겠다는 내용은 있어도 정부위원회 축소는 없다.

 위원회 축소는 5년 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내세운 43개 핵심 국정 과제 중 두 번째였다. 당시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정부위원회가 416개(2007년 6월 기준)에 달해 ‘위원회 공화국’이 됐다. 205개만 남기고 정리하겠다”고 발표했다. “각종 위원회가 난립해 의사 결정 속도를 떨어뜨리고 책임행정을 저해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5년 만에 위원회 수는 줄기는커녕 거꾸로 89개 늘었다. 원래 목표와 비교하면 300개나 많다.

 역대 정부는 대체로 비슷한 길을 걸었다. 김대중 정부는 임기 첫해인 1998년 “1년 안에 372개 위원회 중 145개를 통폐합하겠다”고 의욕을 보였으나 임기 말 위원회 수는 첫해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노무현 정부도 임기 초인 2003년에는 정비계획을 추진했으나 2005년 이후에는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수를 대폭 늘렸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법령에 근거도 없이 편의적으로 설치한 위원회가 적지 않다”며 “전수조사를 한 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필요도 없는 위원회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결국 국민 부담이 되고 행정 비효율로 이어진다”며 “특히 특정인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만드는 ‘위인설관(爲人設官)’식 위원회는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아 더욱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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