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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패배하고도 진영논리에 끌려다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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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인식
정치국제부문 기자

대선 열기가 달아오른 지난해 12월 초,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캠프의 한 인사가 이렇게 말했다. “종편(종합편성채널)을 보니 새누리당 사람으로 가득하더라. 그것만 보고 있는 그분들이 딱하다.”

 3인칭으로 지칭된 ‘그분들’이란 세대로는 50대 이상, 이념적으론 중도와 보수를 의미할 것이다. 딱하다는 말 속엔 한쪽의 메시지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일 거라는 추측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들이 ‘딱하다’고 했던 50대는 89.9%(방송 출구조사 예측치)가 투표장에 나왔다. 그리고 박근혜 당선인에게 62.5%의 지지를 보냈다. 1987년 민주화의 넥타이 부대였으며,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과거의 우군’ 50대가 새누리당을 더 많이 지지함으로써 민주당은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대선 패배 후 민주당 내에선 패인 분석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중 진영논리에 갇혀 종편을 적대시하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미디어 전략의 실패를 꼽는 사람이 많다.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미디어와 매체만 상대하고 종편을 적으로 돌려 출연 거부 방침을 세워온 걸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의 종편 출연 거부 전략은 선거 당시에도 당내 반발을 샀었다. 한 중진 의원은 “민주당이 미디어법 통과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종편 출연을 거부하는 건 유치한 발상”이라며 “모 항공사가 태생적 문제가 있다고 해서 비행기 안 타고 배 타고 다닐 거냐”고 힐난했다.

 이런 반성 끝에 문희상 비대위원장, 박기춘 원내대표 등 지도부는 종편 출연금지 당론을 폐기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2030세대와 SNS에 치중하면서 그것과 거리가 먼 세대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50대 위원회를 만들어야겠다(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자성론도 나왔다. 17일 의원총회를 열어 종편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하지만 의총을 하루 앞둔 16일 돌연 이 안건을 유보하자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 종편 문제로 의원들끼리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지만 정청래 의원 등 ‘선명한 야성’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종편 출연과 모바일 투표 폐지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게 근본 원인이다.

 민주당 비대위는 요즘 전국 ‘회초리 투어’를 벌이고 있다. 가는 곳마다 “대선에 져 죄송하다” “회초리를 때려달라”며 큰절을 세 번씩 올리고 있다. 국민을 편가르고 진영논리를 앞세워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한 행태에 대한 반성이리라. 이런 가운데 나온 종편전략 수정 안건 보류결정이 상당수 민주당 사람들을 맥 빠지게 하고 있다. 한 비대위원은 기자를 만나 이렇게 탄식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패해도 패한 줄 모르고, 패한 원인을 말해도 아니라고만 하니 도대체 어쩌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