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컴팩 인수계획 창업주 후손반대로 위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월 발표된 휼렛 패커드(HP) 의 컴팩 인수계획(2백10억달러 규모) 이 창업주 후손들의 반대에 부닥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WSJ) 등 외신들은 합병 발표 당시 찬성했던 휼렛 집안의 후손들이 최근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이유로 반대로 돌아서면서 합병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놓였다고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HP의 공동 창업자 윌리엄 휼렛의 맏아들인 월터 휼렛(57.사진) 은 이날 "HP가 컴팩을 인수하지 않고 독자기업으로 존재할 때 더 큰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며 합병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합병으로 인해 HP가 저가 PC시장에 노출될 경우 잘 나가는 프린터사업의 수익성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HP의 이사인 월터는 1966년 부모가 설립한 윌리엄&플로라 휼렛재단의 이사장직도 맡고 있다. 윌리엄의 두 딸인 엘리너와 매리도 참여하고 있는 이 재단은 현재 HP 주식 5%를 가지고 있다. 이 재단은 지난 5월 스탠퍼드대에 4억달러를 기부하는 등 공익사업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관계자들은 지분율은 5%지만 창업주의 자식들이 합병에 반대함으로써 다른 주주나 이사들이 동조할 수 있으며, 이럴 경우 합병이 무산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HP 주식을 10% 갖고 있는 공동창업자 패커드 집안도 현재 재무분석가들을 동원해 합병의 득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만일 합병안이 부결될 경우 통합회사의 최고경영자(CEO) 를 맡기로 돼 있는 HP의 칼라 피오리나 회장도 물러날 확률이 높다.

이날 휼렛가의 반대 소식이 알려지면서 HP 주가는 17%나 폭등해 지난 8월말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컴팩은 5.45%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그만큼 HP의 컴팩 인수를 안좋게 보고 있다는 말이다.

HP는 그동안 프린터업체로 명성을 날려왔으나 최근 개인용 컴퓨터시장에 진출한 뒤부터 극심한 가격경쟁에 시달리면서 경영상태가 악화돼 왔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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