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당신, 연 3050만원 원하지만 버는 건 215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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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연 5000만원을 벌던 당신이 은퇴 후 원하는 소득은 연 3050만원, 그러나 부지런히 모아 마련할 수 있는 건 연 2150만원. 노후에 대비하는 도시근로자의 이상과 현실 사이엔 ‘부족한 900만원’이 숙제로 자리 잡고 있다.

 피델리티자산운용은 15일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노년·은퇴설계지원센터에 의뢰해 도시근로자의 은퇴자금 준비를 분석해 발표했다. 서울대는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와 노동부의 임금 조사 등을 토대로 도시근로자의 은퇴 후 예상 소득을 산출했다.

 이에 따르면 도시근로자 가구는 노후에 은퇴하기 직전 소득의 61%를 벌기를 원한다. 하지만 실제로 마련할 수 있는 건 43%로 추산됐다. 은퇴 직전에 연 5000만원(월 416만원)을 벌었던 사람이라면, 은퇴 후 실제로는 그 절반도 못 되는 연 2150만원(월 179만원)의 소득을 올릴 것이라는 뜻이다. 은퇴 후 소득은 개인 저축에서 연 1244만원(월 103만원), 국민연금에서 연 771만원(월 64만원), 퇴직연금 연 133만원(월 11만원) 등에서 나온다. 보유한 부동산은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은퇴 후 소득이 은퇴 전의 80%는 돼야 한다고 본다. 한국 도시근로자의 은퇴 후 소득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고, 홍콩(50%)과 비교해도 낮다.

 그나마 이는 도시근로자만을 대상으로 구한 평균이다.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지 않은 자영업자나 농어촌 지역 인구는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를 감안하면 국민 전체의 은퇴 후 평균소득은 더 낮아진다.

 그래도 노후에 이전에 벌던 것의 43%에 해당하는 소득이 생긴다면 썩 나쁘지 않은 듯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저축과 투자를 통해 매년 6%의 수익을 올릴 수 있고, 물가는 매년 상승률 3.4%로 안정되며, 60세에 은퇴한다는 몹시 낙관적인 가정에서 나온 숫자다. 예금 금리가 연 3%대인 저금리 시대에 매년 6%의 수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 물가는 오르고 은퇴는 갈수록 빨라진다. 연구소는 더구나 저축한 돈을 자녀 결혼비용이나 의료비 등 목돈으로 쓰지 않고 오직 노후를 위해 모은다고 전제했다. 목돈을 지출할 경우 모자라는 금액은 부동산을 처분하거나 노년에도 계속 일을 해 채우는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눈높이를 낮추고 있다. 노후대비를 위한 자산이 비약적으로 늘기는 어려워서다. 피델리티자산운용과 서울대가 조사한 목표와 현실 간의 괴리는 2년 전에 비해 줄었다. 은퇴 후 희망 소득이 은퇴 직전 소득의 몇 %인지를 나타내는 ‘목표소득 대체율’은 2년 전 같은 조사에서 62%였지만 이번에 61%로 1%포인트 낮아졌다. 은퇴 후 예상 평균 소득이 은퇴 직전 소득의 몇 %인지를 보여주는 ‘은퇴소득 대체율’은 2년 전(42%)보다 1%포인트 상승한 43%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은퇴 준비 격차’는 2년 전 20%포인트에서 18%포인트로 낮아졌다. 도시근로자의 은퇴 준비가 향상된 게 아니라 은퇴 후 생활수준에 대한 기대를 낮춘 탓이다. 연구를 주도한 서울대 최현자(소비자학) 교수는 “은퇴 준비와 관련해 나오는 모든 연구와 전망이 비관적이다. 이 때문에 이를 접한 도시근로자는 은퇴 이후의 삶을 낙관하기보다는 ‘줄여야겠구나’ 하고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은퇴 후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개인저축에 의지해야 하는 현실과 관련이 깊다. 은퇴 후 소득원 중 개인저축(54.8%) 비중이 가장 높았다.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2010년 국민연금이 41%였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35.9%로 낮아졌다. 서진희 피델리티자산운용 상무는 “개인자산 의존도가 높아 불균형 상태”라고 말했다. OECD가 권하는 이상적인 비율은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 4:3:1이다. 금융사의 적극적인 ‘은퇴상품 마케팅’도 개인저축 비중을 높이는 데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사의 연금상품 수익률은 낮고 비용이 과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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