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 때문에 한국서 사업 못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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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침체가 가속화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 진출한 외국 기업인들이 최근 들어 한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견해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올해 우리 경제가 겪는 부진은 미국 테러사태 같은 돌발적인 요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업들의 수출 및 투자 부진과 경쟁력 하락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훈수'는 새겨들어야 할 내용들이 적지 않다.

지난 6일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가 주한 외국 경제인 1백여명과 함께 자리한 간담회가 좋은 예다.

'외국 경제인이 본 한국 경제의 혁신 과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간담회에서 제프리 존스 주한 미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이 경제.지도력.경쟁력 면에서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들은 기업 경영의 투명성,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도 함께 요구했다.

존스 회장은 특히 "경쟁력을 높이려면 정부의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나 오늘날 한국 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라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은 정부가 말로만 규제 완화를 내세울 뿐 기업의 투자 의욕을 자극할 실질적인 조치는 내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출자총액 한도제 완화나 세제 혜택 등 투자 회복에 필요한 조치들이 정부 부처간 또는 정당간의 이견으로 하염없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들 역시 규제 때문에 숨막히기는 마찬가지다.

"일본 기업들이 투자를 늘릴 수 있도록 투자환경을 개선해 줘야 한다"는 야노 마사히테 서울 재팬클럽 회장의 지적이 외국 기업들의 시각을 대변한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탓도 있겠지만 이런 투자환경 문제가 실제로 외국 기업들의 대한(對韓)투자를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산업자원부 집계에 따르면 외국인들의 직접투자는 지난 10월에만 전년 동기보다 24% 감소했으며, 올들어 10월까지 누계로도 지난해보다 9.4% 줄어든 1백10억달러선에 그치고 있다.

경제의 발목을 잡는 집단이 비단 공무원만이 아니라는 윌프레도 호리에 전 제일은행장의 지적도 경청할 만하다. 지난 2년여 동안 한국의 현실을 체험한 그는 6일 저녁 주한 외국 기업 최고 경영자들의 모임에서 공무원 외에 국회의원.언론인을 한국 경제를 위해 제구실을 못하는 집단으로 꼽았다.

그는 한국의 국회의원은 "바쁜 기업인을 불러놓고는 졸거나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고", 일부 언론인들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기사를 쓴다"고 꼬집었다. 공무원은 과잉 규제의 당사자로 비판했다.

이들 외국 기업인들은 기본적으로 '장사꾼'이므로 개별적인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한국을 본다는 한계는 있다. 그러나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는 한국 경제를 되살릴 처방을 하루 빨리 찾아야 한다는 절박성을 인정한다면 이들의 충고는 한마디도 간단히 흘려 들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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