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감독인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 … 아산시민 응원 큰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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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아산 이순신 체육관에서 만난 김호철 아산드림식스 감독은 “시즌이 끝나기 전까지 인수 기업을 찾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조영회 기자

아산 최초의 프로 스포츠 팀인 드림식스 배구단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성적을 보면 의아해 할 수도 있다. 6승9패(승점 17점) 총 6개 팀 가운데 5위. 하지만 최근 7경기에서는 6승 1패를 기록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 시즌 최고 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전통의 강호 삼성화재를 꺾는 이변을 연출하더니 지역 라이벌 현대캐피탈(천안 연고)에게 2연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산 이순신 체육관에 관중들이 몰리는 이유다. 승리를 바치는 ‘제물 팀’에서 순위 싸움의 ‘복병’으로 바꿔 놓은 중심에는 김호철(58) 감독이 있다. 올해부터 드림식스의 수장을 맡고 있는 김 감독은 1995년 이탈리아리그 파르마클럽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트레비소(1996년), 라벤나 밀라발란디아(1999년)를 거쳐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현대캐피탈 사령탑을 맡은 바 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잘 따라와 준 결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며 “하지만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계속 전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김 감독의 일문일답.

-시즌 개막직후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8연패를 당하며 꼴찌에 머무르다 최근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경기력이 살아난 이유는.

 “나도 우리 팀이 고전할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8연패까지 할 줄은 몰랐다.(웃음) 하지만 언젠간 반전의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보다 한 단계 높은 순위에 있던 KEPCO만 잡으면 상승분위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KEPCO를 이긴 뒤부터 선수들의 사기가 높아졌다. 그 여세를 몰아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를 이긴 것 같다.”

-아산시민들이 느끼는 지역 라이벌 천안을 연고로 두고 있는 강호 현대캐피탈을 두 번이나 꺾었다. 선수들에게 특별히 주문한 것이 있나.

 “그런 건 없었다. 긴장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하라고 했을 뿐이다. 사실 이기로 난 뒤에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현대캐피탈 선수들도 모두 내 제자 아닌가.(김 감독은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현대캐피탈 감독을 역임한 바 있다.) 경기 끝나고 현대 선수들에게 축하 전화가 많이 오더라. 오히려 난 그때마다 “제대로 하라”고 꾸짖은 기억이 있다. 앞으로도 현대 캐피탈 선수들을 만나면 감회가 새로울 듯 하다.”

-리그 개막전부터 드림식스는 스폰서와 연고지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앨리트 코스만 거쳐온 김 감독에게는 색다른 도전이었을 텐데.

“18년의 감독 생활 동안 주인 없는 팀은 처음이었다.(웃음) 현대 캐피탈 감독에서 물러나고 1년간 TV해설을 하면서 빨리 현장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드림식스 선수들을 보면서 ‘내가 이 팀의 감독이라면 이런 저런 작전을 펼쳤을 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감독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두말 할 것 없이 수락했다. 배구인으로서 비인기 팀을 인기 팀으로 바꿔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호랑이 감독’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만큼 선수들에게 무섭다고 소문이 나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하던데.

“나도 알고 보면 부드럽고 자상한 남자다.(웃음) 드림식스 선수를 가르치면서 나도 배우는 좋은 경험을 쌓고 있다. 지도자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캐피탈에 있었을 때는 실제로 카리스마 있는 무서운 감독으로 통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 캐피탈 선수들은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상태였다. 현대라는 대기업이 스폰서로 있어 팀 재정이 훌륭했다. 선수들이 배구 이외에 다른 쪽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선수들에게 자극을 주려면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드림식스 선수들은 달랐다. 스폰서가 없고 연고지에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면서 자신들 스스로 소외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선수들에게 채찍만을 가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자상하게 대했고 항상 ‘우리가 열심히 하면 보상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선수들의 마인드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된다.”

-아산이라는 곳에 연고를 둔 소감은.

 “정말 감사하다. 팀이 8연패 할 당시에도 복기왕 아산시장이 언제나 경기장에 찾아와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아산시민들도 관중석을 가득 채워줬다. ‘아산 맑은 쌀’을 비롯해 김치, 밑반찬 등 먹을거리도 풍부하게 제공해줘서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좋은 경기로 보답하고 싶다.”

-추후 목표가 있다면.

 “시즌 전과 목표는 늘 동일하다. 팀이 정식으로 인수되는 것이 목표다. 우리가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즌까지 드림식스의 성적이 나빴던 가장 큰 이유는 선수들에게 의지할 수 있는 기업·연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드림식스 선수들은 언제나 ‘팀이 잘하면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시즌을 출발하다가 매각 소식이 뜸해지면 시즌 중반 자포자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번 시즌에는 꼭 인수 기업이 나타났으면 좋겠다.”

-중앙일보 천안아산& 독자와 아산시민들께 한 말씀.

 “일단 현대 캐피탈에서 감독 생활을 할 때도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해서 친근하다. 이젠 현대 캐피탈 감독이 아닌 드림식스의 감독으로 선전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8연패 할 때는 목욕탕에서 시민들을 만나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웃음) 아산시민들이 배구에 대한 관심을 더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경기장을 찾아오는 시민들을 실망 시켜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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