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윤병세 위원의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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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국방통일분과 위원인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해 11월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거북스러운 질문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냈는데, 왜 문재인 후보 쪽으로 가지 않고 박근혜 후보를 택했느냐는 돌직구가 날아왔다. 그러자 윤 위원은 이렇게 맞받았다. “외교안보 분야에선 오랜 경험을 쌓은 직업 외교관들이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보좌하는 게 아주 오랜 전통입니다. 당파적 이해라든가 이념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이죠.” 정치적 변신이 아니라는 의미로, 나름대로 센스 있게 받아넘긴 것이다.

 하지만 윤 위원의 말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려면 이런 전통이 자신에게만 국한돼서는 곤란하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팀 전체에서 그런 평가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 위원은 현 정부에서 피해를 본 고위 공직자 중 한 명이다. 윤 위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이 벌어졌을 때 외교안보수석이었다. 노무현 정부와 차별성을 강조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엉뚱한 지침이 생겼다. ‘2007년 정상회담 당시 청와대에 근무한 외교안보 공직자들에겐 보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10·4 선언’이라는 대북 퍼주기 정책에 관여한 업보(?)라는 게 비공식적인 이유였다. 윤 위원은 결국 다른 공직자 몇 명과 함께 자리를 물러났다.

 그러나 윤 위원은 5년 만에 박근혜 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중심축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진보 성향인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책임자가 보수 성향인 박근혜 정부의 실세가 됐다는 점은 대북정책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대북 인식과 정책에 대해 완전히 양분된 상태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이전 정부의 대북정책을 뒤집고,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이전 10년간의 대북 포용정책을 거부하자 이런 상황은 더욱 심화되었다. 정권마다 이념과 노선을 같이하는 관료와 전문가 그룹만 등용하는 바람에 국가 차원의 소중한 대북 역량을 상당 부분 썩혀버린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그 정도가 심했다. 국정원, 외교부, 통일부 수장과 청와대 핵심 비서관의 대부분이 대북 강경파로 충원되었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을 다뤄온 베테랑 관료들도 생각이 다르면 거의 배제되었다. 대북 포용을 내세웠던 김대중 정부가 초대 통일부 장관에 대북 강경파인 강인덕씨를 임명했던 것과 같은 발상은 아예 없었다.

 경제회복을 강조한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 내용이나 대화를 강조하는 미국 국무·국방장관의 등장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남북관계는 현 정부 때보다는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무너질 테니까 기다리자’는 식의 대북 접근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잘못하면 미국·북한으로부터 왕따당할지도 모른다. 90년대 후반 미국이 북한과 수교협상에 들어갔는데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헛발질만 한 것처럼 말이다. 북한이 어떤 상황에 처하면 어떤 대응을 했는지 역사적으로 꿰뚫어보고, 북한의 발언 속에는 향후 어떤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지를 통찰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우리 사회에는 남북대화에 능한 전문가, 북한에 대한 예측력이 강한 전문가 등 다양한 계층의 대북 전문가 그룹이 있다. 윤 위원은 이런 힘을 모두 모아 대북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캠프에서 같이 일한 인사들로만 외교안보팀을 구성한다면 역대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게 분명하다.

 윤 위원은 지난해 9월 토론회에서 “대북정책이 가장 초당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올바른 진단이다. 야당의 뜻대로 할 수는 없지만 야당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대북정책은 초당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내가 전문가이니까,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으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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