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서울시립미술館의 '미술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제 2대 서울시립미술관장에 취임한 하종현(68.전 홍대 미대 교수)씨는 15일 기자들과 만나 뜻밖의 인물이라는 미술계의 놀람에는 아랑곳없이 "나를 믿어달라"는 완곡한 말로 입을 열었다.

(사)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과 한국민족미술인협회 등 6개 문화단체가 '서울시는 하종현 관장의 인선 과정을 구체적이고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성명을 내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였다. 河씨는 "처음부터 매를 들면 어쩌란 말이냐. 1년 정도 일하는 걸 보고 판단해 달라"고 부탁했다.

"유준상 전 관장이 퇴임한 뒤 그 자리가 빈 채로 미술관이 표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지요. 미술계에 대한 마지막 봉사라 여기고 채용 공고에 응했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한 경험은 없지만 국제적인 미술전인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도 지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도 했으니 나라고 못할 건 없겠지요."

전문성을 갖춘 젊은 세대가 관장에 선정되기를 기대하던 미술계가 느낀 실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나를 자꾸 때리면 시 관리들이 관장을 뭣으로 보겠느냐"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미술관 정상화, 시민이 사랑하는 미술관, 젊은 작가들을 위한 발표장, 국제적 도시의 미술관 지향 등 이명박 시장이 요구한 구상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河관장은 서울시와 행정직 공무원으로부터 미술관의 조직과 전문 인력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는 일에는 무관심한 듯했다. 그는 "독립 안 된 게 뭐 있느냐"고 되물었다. 현 미술관 형편은 그의 표현 그대로 '머리만 있고 팔다리가 마미된' 상태지만 거기에 대해서도 낙관 일변도였다.

이어지는 대답은 더했다. 지난 해 5월, 옛 대법원 자리로 이전 개관한 뒤 반 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시립미술관이 전문직과 행정직 사이의 견해 차이로 들끓었던 일련의 사태를 상기시키자 그는 오히려 "전문직들에 대한 징계 사유도 일리가 있더라"고 공무원들 시각을 두둔하기 바빴다. 1년 뒤의 미술관 모습이 궁금해진다.

정재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