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로 자녀·사업 고민 상담 ‘인생 충치’도 치료해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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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주민들의 치아 건강을 돌보며 사주도 봐주는 김선이 원장. [나혜수 기자]

강남대로를 따라 뱅뱅사거리를 지나가는 안쪽 동네인 서초 2동에는 특별한 치과가 있다. 보통 치과라 하면 충치를 치료하러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과의 마찰, 사업에 대한 고민 모두를 상담할 수 있다. 치아도 치료하고 마음도 치료하는 곳이랄까.

“아이들과 성급하게 대화하려고 들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세요. 진로에 대해서 너무 걱정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요.” 깔끔한 인상의 여의사가 환한 표정으로 환자를 반긴다. 분명 치아가 아파서 온 주부인데 상담 내용이 독특하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요즘 들어 부쩍 서먹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상담하는 의사 선생님의 모습 역시 특이했다. 한자가 잔뜩 적혀 있는 책을 손에 들고 꼼꼼하게 분석한 후 상담에 임한다.

이는 서초 2동 믿음치과 김선이(50) 원장이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다. 아픈 치아를 깨끗하게 고쳐주는 선생님으로 주민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원하는 환자들에 한해서 사주(四柱)를 봐주기로도 유명하다. 진료도 하고 사주도 봐주는 동네 고민 해결사 역할이다.

“치과 치료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번 내원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환자들과 많은 얘기를 하게 되죠.” 김 원장은 환자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종종 그들의 사주를 봐주곤 한다. 사주를 본다고 해서 진료의 의례적인 과정으로 사주 상담이 들어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앞날이 막혀서 고민이라는 환자가 있을 경우 자신이 사주를 공부했으니 좀 도와준다는 식이다. 종종 입소문을 통해 김 원장의 소문을 듣고 치료 도중 불쑥 사주를 봐달라고 애교를 부리는 환자도 적지 않다.

그녀가 동네 주민들에게 사주 봐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그냥 심심풀이 정도가 아니다. 전문적으로 공부한 결과다. 지난 2000년 초반, 일산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그녀는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인생의 궤도에 흐름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을 가졌다. 그때부터 재미 삼아 독학으로 사주를 공부했다.

어느 정도 숙달되자 이번에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졌다. 국내 한 대학교의 사주명리학 강의를 3년 동안 들었다. 그동안 연습한 사주 풀이만 해도 4권의 노트로 정리될 정도였다. 2006년 서초 2동으로 병원을 옮기고부터는 자신이 사주를 공부했다는 것을 알게 된 환자들에게 조금씩 사주 풀이를 해주기 시작했다.

“자기 삶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치료를 해드리면서 간혹 사주 상담을 하면 너무 좋아하세요.” 김 원장이 말한다. 무섭고 딱딱한 병원 분위기 대신 호기심 가득한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에 환자도, 의사도 편하다.

그녀의 열성 팬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올 때마다 사주를 봐달라고 하는 환자들이다. 한 번은 내원한 환자가 치료 상담 도중 사주를 궁금해하길래 풀었더니 너무 좋지 않은 풀이가 나왔다. “재물이 깨지는 상황이니 사업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씀 드렸는데 정말 재물 손실이 있었어요. 그 뒤로 매번 저에게 사주를 풀어달라고 말씀하세요.”라고 김 원장은 웃어 보였다.

그런 김 원장만의 환자 돌봄 방식은 실제 진료에도 상당히 도움이 된다. 사람의 태어난 시기를 계산해 길흉화복을 알아보는 사주로 알 수 있는 것은 다양하다. 적성 등 인성에 관한 사항이나 부모·형제·부부 등 대인에 관한 사항, 학운, 건강, 상벌 등이 있다. 그런 만큼 사람의 인상과 사주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사주를 물어보지 않았어도 그 환자의 말투나 눈빛을 파악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다.

제대로 공부한 그의 역학 지식은 환자 치료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이제는 환자의 모습만 보고도 성향 파악이 빠르게 이뤄져요. 치료 상담을 어떻게 할 것인지, 좀 더 편안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게 돼 치료에도 도움도 많이 됩니다”

김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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