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장롱자금 끌어내기 … 손자 교육비 대주면 비과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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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본 정부는 손자에게 할아버지·할머니가 교육비를 증여할 경우 증여세를 물리지 않기로 했다. “고령자들의 장롱에서 잠자는 예금을 끌어내라”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특명에 따른 것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9일 “이달 중 국회에 제출할 긴급경제대책에 포함되는 감세 조치의 하나로 조부모가 손자에게 교육비를 일괄 증여할 경우 1인당 1000만~1500만 엔(약 1억2000만~1억8000만원) 한도에서 증여세를 비과세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현재 조부모가 손자의 대학 수업료를 매년 직접 지불할 경우 원칙적으로 증여세를 면제하고 있지만 한꺼번에 4년간의 수업료를 증여할 경우 증여세를 부과하고 있다.

 신문은 “이 같은 증여세 비과세정책은 고령자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을 젊은 세대로 넘겨 유용하게 쓰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향후 수년간 이 같은 비과세정책을 유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일 정부는 또 갓 태어난 유아에게 미래의 대학 입학자금을 부모가 일괄 증여하는 경우에도 비과세를 적용키로 했다.

 이는 고령자를 중심으로 일본 국민이 금융기관에 예치하지 않고 장롱 속에 보관 중인 이른바 ‘장롱 예금’이 40조 엔(약 488조원, 2012년 추정치)에 달하고 있어 경기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끌어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장롱 예금 규모는 사실상의 제로금리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상대적으로 높은 증여세율 때문에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현 장롱 예금 규모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전체 화폐 발행액의 절반에 달한다. 이 밖에 일반 국민이 은행에 맡겨두고 전혀 거래를 하지 않는 휴면 예금액도 2010년 말 기준으로 882억 엔에 달하고 있어 이를 유용하게 활용하는 게 급선무로 여겨져 왔다.

 한편 일 정부는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미사일 구매와 전투기 수리에 나서기로 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9일 “일 방위성은 올해 비상경제대책을 위한 추경예산으로 2124억 엔(약 2조6000억원)을 요구했다”며 “하지만 이 중 대부분(85%)인 1805억 엔(약 2조2000억원)은 지대공 패트리엇(PAC-3) 미사일 구입, F-15 전투기 보수 등 장비 도입과 정비와 관련된 비용”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이게 경제대책으로서 (추경예산에 포함하는 게 옳은지) 의문도 나오고 있다”며 “하지만 아베 정권의 방위예산 확대 방침에 따라 재무성은 방위성의 이 같은 요구를 전액 인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베 정권은 올해 추경예산안을 13조1000억 엔(약 160조원) 규모로 편성해 이달 중 열리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2013년도(올해 4월~2014년 3월)에 실시되는 사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긴급경제대책 예산 규모는 20조 엔(약 244조 원)에 달한다. 문제는 지난달 취임 이후 국방력 강화에 나서고 있는 아베 신조 내각이 대규모 긴급경제대책이란 명목 아래 무기 구입 등의 예산을 슬그머니 끼워 넣기에 나선 것이다.

 추경예산안에 들어간 사업은 구체적으로 PAC-3 미사일 도입과 F-15 전투기 4대의 수리, 해상·공중 경계감시 능력 향상을 위한 초계 헬리콥터 3기 도입, 중거리 지대공 유도탄 구입, 수송 헬리콥터 3대와 구난 헬리콥터 2대 도입 등이다. 방위성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에 대응하기 위해 주요 국방 장비의 대규모 정비가 필요하다”며 “도입 장비가 대부분 외국산이긴 하지만 라이선스 계약 등을 통해 일본 국내에서 70∼80%가량 생산하기 때문에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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