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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들과의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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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경민
뉴욕특파원

뉴욕특파원을 3년 반 한 덕에 새해 첫날 예사롭지 않은 호사(豪奢)를 누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을 두 분씩이나 모신 자리에서 떡국을 먹었다. 유엔주재 한국대표부와 뉴욕총영사관이 연 신년인사회에서였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가수 싸이의 대화 몇 토막.

 반 총장=강남스타일이 11억 뷰를 넘겼다는데 그게 중국 빼고도 그런 거라면서요?

 싸이=네. 유튜브가 구글 소유인데 구글이 중국에서 철수했거든요. 한데 얼마 전 구글에서 재미있는 통계 하나를 귀띔해주더라고요. 강남스타일 11억 뷰 중에 북한으로 출처가 확인된 게 6건 있다고요. 도대체 6명이 누구일지 무척 궁금해요.

 반 총장=6건이 적은 건 아니에요. 개미 한 마리가 큰 댐을 무너뜨리는 법이에요. 눈에 띄지도 않는 미세한 개미굴이 삽시간에 댐 전체를 허물어뜨리죠. 게다가 북한엔 개미가 6마리나 있다지 않아요.(웃음) 그나저나 싸이의 미국 매니저가 대단한 사람이라면서요?

 싸이=세계적인 아이돌 스타 저스틴 비버를 키워낸 스쿠터 브라운이란 친굽니다. 미국 와서 보니 불과 10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이 북미 음악시장을 주무르고 있더라고요. 이 극소수의 사람들 손바닥 위에서 전 세계 음악시장이 돌아가고 있는 거죠. 브라운도 그중 한 사람인데 지난해 7월 15일 강남스타일을 유튜브에 올린 지 꼭 8일 만에 직접 저한테 전화를 했어요. 장난전화인 줄 알고 뚝 끊어버렸더니 e-메일을 보내 ‘나 저스틴 비버 매니저 맞다’며 한번 만나자고 하더군요. 이런 파격이 세계를 지배하는 힘이구나 느꼈습니다.

 반 총장=지난달 백악관 공연을 앞두고 과거 반미 노래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다죠?

 싸이=오바마 대통령 가족이 참석하는 공연을 불과 며칠 앞두고 백악관 청원 사이트에 한 재미교포가 싸이를 초대하지 말라는 글을 올렸더랬습니다. 입에 담기도 힘든 댓글이 막 쏟아졌죠. 이대로 짐 싸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과를 하고 나니까 저를 두둔하는 댓글이 쇄도하는 거예요. 욕설이 난무하자 백악관도 해당 게시글을 삭제하고는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딱 잘라버리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대화록을 정리하다 새삼 눈이 번쩍 뜨였다. 동서를 넘나들고 백악관과 오바마가 등장하며 구글의 내부 통계가 반찬처럼 올랐던 밥상에 내가 끼었던 거다!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빈(主賓) 테이블에 앉는다는 거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어디 반 총장과 싸이뿐이랴.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니다. 동북아를 넘어 세계를 경영할 안목과 역량을 시험받고 있다. 곧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와 국회도 국내 정치놀음과 낡아빠진 이념의 우물에서 기어올라와 우리에게 쏠린 세계의 이목을 한 번만이라도 살핀다면 얼마나 안심이 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