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범, 30㎞ 걷는 동안 검문 한 번 안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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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노영대가 일산경찰서에서 도주한 뒤 걸어서 인천으로 이동 중 동상에 걸린 발 사진(오른쪽)과 수갑을 빼내면서 입은 손가락 상처 사진(왼쪽)을 공개했다.

경찰 조사 중 도주한 일산 성폭행 사건 피의자 노영대(32)씨는 첫날 10시간 가까이 걸어 인천까지 달아났으나 한 차례도 검문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5박6일 동안 경기도 일산과 부천, 인천, 안산 등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니며 모텔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검문·검색 등 경찰의 수색망은 그를 비켜갔다. 이에 따라 허술한 검문과 초동 대처 및 관할 구역이 다른 경찰서 간의 공조 수사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안산에서 도주 엿새째인 25일 체포된 노씨는 경찰 조사에서 “(20일 오후 7시40분쯤) 경찰서 담을 넘어 호수공원 쪽으로 간 뒤 김포대교를 건너 인천 구월동까지 걸어서 이동했다”고 진술했다. 주로 국도와 농로를 이용했다고 노씨는 밝혔다. 도주 장소에서 30㎞가량 떨어진 인천 구월동에 도착하자 날이 밝았다. 경찰은 “노씨가 밤새 걸어간 탓인지 발에 동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노씨가 진술한 도주 경로 중 김포대교 입구 등에 초소가 있지만 그는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일산경찰서가 노씨를 놓친 사실을 상부에 보고한 뒤 경찰이 공조수사에 나선 것은 도주 이튿날부터였다. 노씨는 “도주 당시엔 맨발이었으나 인천으로 가는 도중에 슬리퍼를 주워 신었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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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인천 도착 직후 친지에게 연락해 부천 상동에 사는 친구 박모(32)씨의 연락처를 알아낸 뒤 택시를 탔다. 박씨와의 약속 장소에 도착한 그는 택시 창문을 내리고 현금 20만원을 전달받았다. 다음날엔 추가로 30만원을 받았다. 그는 이 돈으로 안산과 부천, 인천을 오가며 모텔에 투숙하고 수배 전단과 다르게 보이기 위해 삭발을 했다. 경찰은 노씨의 도피를 도운 친구 박씨에 대해 범인은닉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노씨는 경찰서를 빠져 나온 직후 수갑을 풀었다고 진술했다. 노씨는 경찰 조사에서 “양손에 수갑을 찬 채 경찰서 담을 넘고 8차로 대로를 건넌 직후 왼손으로 수갑을 잡아 고정하고 오른손을 강하게 잡아당겨 빼냈다”며 “이때 오른손 엄지손가락 윗부분에 상처가 났지만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아픈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경찰은 노씨가 수갑을 풀어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을 신속하게 확인하지 못해 3시간30분 동안 경찰서 주변만을 집중 수색하는 등 초동대처에 실패했다. 노씨는 이후 핀을 사서 왼쪽 수갑도 풀려고 시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오른쪽 수갑 고리를 왼손에 마저 채운 상태에서 도피해 왔다. 경찰은 “수갑은 규정대로 적정하게 채웠다”는 공식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한 경찰 관계자는 “왼쪽 수갑은 끝내 풀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오른쪽 수갑을 느슨하게 채웠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과 9범인 노씨는 경찰에서 “이번에는 오래 징역을 살게 될 것 같아 도망가서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우발적으로 도주했다”고 말했다. 그는 성폭행과 절도 등으로 10년6개월간 안양교도소 등에서 복역했다가 지난 3월 출소했다. 노씨는 도주 후 추가 범행이나 자살시도 등은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익진·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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