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던 정부 부채 48조원 드러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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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정부 부채가 468조6000억원으로 새로 집계됐다. 기준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숨어있던 부채 48조원이 드러난 것이다. 이로써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규모는 34%에서 37.9%로 높아졌다.

 기획재정부는 24일 최신 국제 기준에 맞춘 재정 통계를 발표했다. 새 기준은 현금이 오가기 전이라도 거래가 발생하면 이를 장부에 반영(현금주의→발생주의)한다. 또 정부 조직·기금 외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도 반영한다. 재정부는 앞으로 국제 비교에서는 새 지표에 따른 부채를 기준으로 쓸 계획이다. 결국 지금까지 한국의 재정 상황이 실제보다는 조금 더 좋게 비춰졌었던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최신 기준을 쓰는 나라는 미국·영국 등 15개국이다. 다만 새 기준으로도 하더라도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규모(37.9%)는 OECD 평균(102.9%)보다 훨씬 낮다.

 가려져 있던 부채가 더 드러나긴 했지만 여전히 신경 써야 할 사각지대는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업 부채다. 과거 기준에 비해 새 기준은 공공기관 부채가 많이 반영(286개 기관 중 151개 반영)됐다. 그러나 국제 기준에 따른 ‘시장형 공기업’은 정부 부채 산정에서 제외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2011년 부채 130조원), 한국수자원공사(12조원)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말 공기업 부채 잔액은 396조708억원이고, 이번 새 회계 기준에 반영된 공공기관 부채는 37조5000억원이다. 뭉텅이로 빠진 부분은 또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채 108조1000억원이다. 어차피 정부 부문 내에서 빚내고 빚진 돈이어서 국제 기준에 따라 상계됐다. 그러나 외국에선 주로 중앙은행의 국채 보유가 많아 한국처럼 국민연금이 국채를 많이 가진 경우는 별로 없다. 이영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 공기업 부채나 국민연금에 숨겨져 있는 국채 등을 관리할 수 있는 별도 지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재정수지 관리에선 연기금 흑자를 뺀 ‘관리재정수지’를 쓰고 있다. 그는 “새 정부에선 복지 등 재정 수요가 더 많을 것”이라며 “단순한 수치가 아닌 실질적으로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 바뀐 국가 회계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문답으로 정리했다.

 - 신·구 부채 산정 방식의 차이는.

 “세 가지 회계 방식이 있다. 과거 방식(현금주의 국가채무)은 실제 돈이 입·출금 될 때 장부에 반영한다. 집계 대상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 국한한다. 새 방식인 ‘발생주의 일반정부 부채’는 돈이 오간 것에 관계없이 거래가 발생하면 장부에 반영한다. 비영리 공공기관의 부채도 반영된다. 가장 포괄적인 부채는 ‘발생주의 재무제표상 부채’다. 국민연금 등 미래 부채까지 포함한다. 이 방식으로 하면 지난해 부채는 773조6000억원(GDP의 62.5%)이다.”

 - 셋 중 뭐가 공식적인 통계인가.

 “셋 다 공식 통계다. 각각 쓰임새가 있다. 현금주의 국가채무에 대한 평가는 정부가 직접 통제 가능한 재정을 얼마나 짜임새 있게 쓰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발생주의 일반정부 부채는 국제 비교 기준이 된다. 재무제표를 통한 부채 파악은 미래 위험까지 감안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왜 과거 방식에선 ‘국가채무’라고 하고, 새 기준에선 ‘일반정부 부채’라 하나.

 “결과적으로 같은 말이다. 굳이 새 기준을 ‘일반정부’라고 한 것은 국가채무라고 하면 가계·기업 등의 부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

 - LH·수공 등의 부채가 제외된 것은 꼼수 아닌가.

 “국제 기준에 따른 것으로 꼼수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선 공기업이 사실상 정부 사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이 부분의 부채에 대해서도 관리를 강화할 필요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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