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치중했던 한국교회, 아름다움 보여줄 때 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개신교계 원로인 서울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가 요즘 경기도 가평에 은퇴 선교사들을 위한 교회와 주거 공간을 짓고 있다. 러시아 연해주의 한국인 독지가로부터 기증 받은 값비싼 홍송 원목 수백 그루를 활용한다. 한 눈에 보아도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계획이다. 홍 목사는 “평생 험한 곳에서 고생한 분들을 건축으로 위로하고 싶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서울 수서동 남서울은혜교회의 홍정길(70) 원로목사는 40년 넘는 자신의 목회 인생을 ‘은총의 세월’로 요약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스스로 이룩한 사역(使役)의 성과들이 불가능했으리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

 대표적인 게 장애인 사역 분야다. 홍 목사는 1997년 지역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장애인 교육시설인 밀알학교를 세웠다. 예배당 건물이 없는 교회가 이 학교 실내체육관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교육’은 장애인 사역의 일부일 뿐이다. 학교를 졸업한 장애아들은 일정한 직업 교육 과정을 거쳐 적은 액수지만 월급을 받는 작업장에 배치된다. 부모의 도움 없이 장애인들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그룹 홈’도 지원된다. 장애인에 대한 생애주기(life cycle) 지원 체계다.

 러시아 연해주의 고려인 돕기, 해외 선교사 파송, ‘코스타(KOSTA)’로 불리는 해외 유학생 현지 선교 등도 모두 홍 목사가 초창기부터 관여한 일들이다. 90년대 초반부터 민간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북한 주민 돕는 일에 나서 2009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가 주는 민족화해상을 받기도 했다.

 홍 목사는 지난 2월 담임목사 직을 후배 목사에게 물려줬다. 요즘은 ‘향기로운 교회’를 짓는 일에 빠져 있다. 은퇴 선교사를 위한 생명의빛교회다. 연해주에서 들여온 수 백 년 수령의 홍송(紅松)을 활용한다. 그의 사역 이력을 결산한 책 『여기까지 왔습니다』(포이에마)도 최근 나왔다. 지난 19일 경기도 가평군 설곡리 공사 현장에서 홍 목사를 만났다.

생명의빛교회 내부 상상도. 원목을 수직으로 세워 부활과 생명을 상징한다. [사진 남서울은혜교회]

 -은퇴 선교사를 위한 교회가 왜 필요한가.

 “한국 개신교 역사는 2000여 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쓰여졌다. 우리가 해외에 선교사를 파견한 지도 30, 40년이 돼 간다. 초창기에 파송됐던 분들이 돌아오고 있는데 정작 이들이 말년을 보낼 공간이 없다. 교회 건물 표면은 빛이 투과되도록 반투명 재질로 마감할 계획인데, 내부를 홍송으로 장식한다. 프랑스 베르사유 대학 교수인 한국인 건축가 신형철씨가 설계했다. 내년 말 완공 예정이다. 교파를 초월해 받을 만한 분들에게 집이 돌아가도록 할 계획이다.”

 -이렇게 공들여 짓는 이유는.

 “돈을 많이 들이자는 게 아니다. 최선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싶다. 세계적인 예술품들은 대부분 신의 사랑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국 교회도 이제 아름다움을 통한 ‘문화적 고백’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여러 분야에 걸쳐 다양한 사역을 했다.

 “삶은 언제나 고백으로 진심이 드러난다. 선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선을 추구해야지 선한 생각만 한다고 선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선을 삶으로 살지 않으면 선한 결과가 생기지 않는다. 갈라디아서에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는 대목이 있다. 사람 안에 선한 씨앗도 있고 악한 씨앗도 있다. 신앙인들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평가 받는 마지막 구원의 순간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한다.”

 -교회세습 등 올해 기독교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이론의 종교에서 삶의 종교로 변화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렇다. 머리를 통한 종교적 감동은 하루면 끝난다. 그 감동이 삶 속에서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

 -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

 “스스로를 객관화시켜야 한다. 내 시각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에서 내가 바른가, 돌아봐야 한다.”

 -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신 날이다. 교인들에게 늘 얘기한다. 내게 보상으로 돌아오는 선물 말고 보상이 되지 않는 선물을 주변에 하라고. 나와 이해 관계가 없더라도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 도움을 주라고 권한다.”

◆ 홍정길 목사=1942년생. 75년 서울 반포동에 남서울교회를 개척해 성장시켰으나 이를 다른 목회자에게 넘긴 후 97년 수서동에 남서울은혜교회를 세웠다. 교회 건물 대신 장애인 교육시설인 밀알학교를 세워 운영하며 학교 실내체육관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린다. 고(故) 옥한흠·하용조 목사, 지구촌 교회의 이동원 목사와 함께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목회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