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훈범의 세상탐사] 루스벨트와 히틀러, 그리고 박근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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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31면

1933년 7월 아돌프 히틀러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한테 열렬한 경애의 서신을 보낸다.

“전 독일 국민이 존경과 관심을 가지고 경제난국에 맞선 당신의 성공적 투쟁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취임 이틀째부터 ‘국가비상사태’라는 명분으로 독재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 미국지도자한테서 히틀러는 뜨거운 동지애를 느꼈을 터다.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도 비슷한 동류의식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말했다. “루스벨트가 독자들에게 각성과 단호함을 불러일으켜 전투에 나서게 하는 모습은 파시즘이 이탈리아 국민들을 일깨운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과 독일·이탈리아의 파시즘에는 분명 닮은 점이 있었다. 1933년 6월 시행된 ‘전국산업회복법’만 봐도 그렇다. 이 법으로 연방 반(反)독점법의 효력이 중지되면서 모든 산업 부문에서 독점기구가 형성됐다. 시장 대신 이 기구가 상품의 생산량과 가격, 임금을 결정했다. 미국에서 ‘규정 당국(code authority)’이라는 이름을 가졌던 이 기구는 독일에서는 ‘산업 카르텔’, 이탈리아에서는 ‘조합’이라 불리던 것이었다. 세 나라 모두에서 그 기구는 같은 권력을 가졌고 오직 국가 수장만이 통제할 수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국가와 미디어가 한몸이었던 것은 꼭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만이 아니었다. 루스벨트는 측근을 연방통신위원장에 임명했고, 그 위원회는 정부에 비판적인 방송국의 허가가 취소될 수 있음을 명백히 했다. 실제로 CBS와 NBC는 제 2차 세계대전때까지 뉴딜에 대한 비판자를 계속 방송에서 축출했다. 할리우드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업자들의 자율규정이었던 ‘헤이스 코드’에는 루스벨트의 마음에 꼭 들 만한 조항이 있었다. “자연권이든 인간이 만든 법률이든 그 어떤 것도 조롱해서는 안 된다.”

뉴딜정책 당시 미국의 고용 촉진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와 나치의 노동 장려 포스터는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흡사하다. 미국의 민간자연보존단과 나치의 청년노동캠프는 의도만큼이나 겉모습도 닮았다. 루스벨트는 “청년들을 도시의 구석진 골목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찬양했고, 히틀러는 “청년들이 거리에서 대책 없이 썩고 있는 것을 막아준다”고 칭송했다.

이런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루스벨트를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구별짓는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을 가장 잘 알아야 할 사람이 곧 우리의 새 대통령 당선인 아닐까 싶다. 박근혜대통령 당선인은 루스벨트만큼의 권력을 가질 수 없을 테고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겠지만, 반대한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 마음속에도 일말의 불안감이 존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박 당선인은 과거 한나라당의 ‘제왕적 총재 체제’에 반발해 탈당한 적이 있지만 자신에게도 늘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걸 막지 못했다.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용서를 안 한다거나, 그런 그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친박 의원들조차 우왕좌왕한다는 얘기들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싸늘한 표정만 지어도 다리가 후들거린다는 의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소 과장된 게 분명할 터다. 게다가 소신과 원칙을 지키다 보면 찬바람이 불 수도 있다. 절반이 넘는 유권자들이 그런 싸늘한 소신과 원칙을 선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소신과 원칙이 자칫 고집과 외골수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위에 다리떠는 ‘찌질이’들만 있는 경우라면 더욱 쉽게 그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기여한 바가 있겠다. 억지도 있었고 막말도 있었지만 박 당선인이 면전에서 그런 도발적 말투를 언제 들어볼 기회가 있었겠나 말이다. 한편으로 박 당선인 앞에 더 많은 이정희가 나타나는 게 좋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억지·막말이 아니라 심기를 거스르는 쓴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박 당선인이 거친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고언을 경청한다는 소문이 나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으로 4선(選)까지 했던 루스벨트도 듣기가 우선이었다. “안녕, 친구들(Good evening,friends!)”로 시작했던 유명한 ‘노변정담(爐邊情談)’도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었다. 듣지 않고 강요만하려 했다면 뉴딜은 결코 성공할 수 없었다.

속을 모르고 껍데기만 따라 했던 전임자를 반추하면 루스벨트가 될지, 히틀러가 될지 길이 절로 보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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