吾不如<오불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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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호 27면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공신들을 모아 연회를 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유방이 물었다.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 무엇인지 제후와 장군들은 숨기지 말고 솔직히 말하시오. 또 항우가 천하를 잃은 까닭이 무엇이라 생각하오?”

漢字, 세상을 말하다

고기(高起)와 왕릉(王陵)이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교만하고 남을 업신여기지만, 항우는 인자하고 남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폐하는 타인에게 성을 공격하고 땅을 공략하게 하고, 함락시킨 곳을 나눠주어 천하와 더불어 이익을 나눕니다. 항우는 현명한 이를 시기하고 능력 있는 자를 질시해, 공이 있는 자를 해치고 현자를 의심하며 싸움에 이겨도 남에게 공로를 넘기지 않고, 땅을 얻어도 다른 이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천하를 잃은 까닭입니다.”

이를 들은 유방이 말했다. “공은 하나만 알고 둘은 아직 모르는구려. 무릇 군 막사에서 군사를 운용하고, 천리 바깥의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것은 내가 자방만 못하다(吾不如子房). 나라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어루만지며, 군량을 마련해 보급이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은 내가 소하만 못하다(吾不如蕭何). 백만 대군을 이끌고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기필코 취함은 내가 한신(韓信)만 못하다(吾不如韓信). 이 셋은 모두 뛰어난 인재인데 내가 그들을 기용했으니 이것이 내가 천하를 얻은 까닭이다. 항우는 범증(范增) 한 명도 제대로 쓰지 못했으니, 이것이 나에게 사로잡힌 이유다.”(사기(史記) ‘고조본기’)
인사(人事)가 만사(萬事)요, 만사가 인사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무수한 인사가 기다리고 있다. 유방의 ‘오불여(吾不如)’ 용인술이 다시 필요할 때다. ‘자만은 손해를 부르고, 겸손은 이익을 얻는다(滿招損 謙受益)’는 철학이 핵심이다. “때에 맞춰 쓰고, 지위에 맞게 쓰며, 장점에 맞춰 일을 맡기고, 원하는 바에 맞춰 쓰라(用當其時, 用當其位, 用當其長, 用當其願)”는 16자 용인술도 참고할 만하다.

인재를 뽑았으면 일할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다. “큰 나라를 다스림은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治大國若烹小鮮)”고 노자(老子)는 말했다. 큰 경영은 ‘입[口]’이 아니라 ‘눈[目]’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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