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주고 떠난’ 장기기증자…올해 처음 400명 넘을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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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올 4월 생후 4개월 된 여자 아기가 뇌경색과 뇌염으로 갑자기 뇌사상태에 빠졌다. 부모는 처음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고민을 거듭하다 장기 기증에 동의했다.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에서 의료진의 설명을 듣고 나서 꺼져가는 또 다른 생명을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아기의 심장은 확장성 심근염을 앓고 있던 11개월 영아에게 이식됐다. 최연소 심장 이식 수술이었다. 신장은 오랫동안 혈액투석을 받던 56세 여성에게 옮겨졌다. 아기는 두 사람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죽음과 마주한 순간에 장기 기증을 실천해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은 뇌사자 수가 올해 처음 400명을 넘길 것으로 보인다. 장기 기증을 애타게 기다리는 대기자 수도 사상 처음 2만2000명을 넘어섰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는 올 11월까지 타인에게 장기를 기증한 뇌사자는 375명으로 지난해 전체 기증 뇌사자 368명을 넘어섰다고 19일 밝혔다. 2002년 36명에서 지난 10년간 1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기증된 뇌사자의 장기는 신장 706건, 간장 334건, 심장 99건, 폐 33건, 췌장 31건, 췌도 3건 등이다.

 질병관리본부 김택 장기이식관리과장은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 올해 처음으로 400명을 넘어설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추세에는 복지부가 지난해 6월 시행한 뇌사 추정자 신고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뇌사 추정자가 생기면 병원이 한국장기기증원에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하고, 간호사 등 코디네이터가 직접 뇌사 추정자가 있는 병원을 방문해 각종 의료·행정적인 지원을 하는 제도다. 장기 기증자의 유족에게는 장례비·위로금 등 최대 54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장기 기증을 사전에 희망한 사람도 올 11월 기준 112만 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뇌사 기증자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대기자는 지난해 처음 2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올해 11월 기준 처음으로 2만2000명을 돌파했다. 한 해 평균 900명 이상의 환자가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뇌사 기증자는 인구 100만 명당 7명꼴로 스페인 34명, 미국 21명 등에 못 미친다.

 그러다 보니 불법 장기매매도 성행하고 있다. 복지부가 적발한 불법 장기매매는 2010년 174건에서 지난해 754건으로 1년 사이 4.3배나 증가했다. 장기 이식 평균 대기기간도 2008년 330일에서 지난해 392.4일로 증가했다.

 질병관리본부 김 과장은 “1만 명 이상이 신장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들인데 평균 5년 이상 기다려야 장기를 받을 수 있다”며 “한 해 뇌사 기증자 수가 현재의 3배인 1500명 정도는 돼야 장기 부족을 해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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