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깜깜이 정부, 깜깜이 언론의 집단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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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용수
정치부문 기자

12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 은하-3호를 발사하자 정부와 언론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본지를 포함해 이 날짜 조간신문들은 모두 북한 로켓의 해체를 보도했다. 국민은 이런 기사를 읽은 뒤 불과 몇 시간 만에 로켓 발사 소식을 접했으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북한 동향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정부, 그리고 슬쩍 흘려주는 정보를 의심하지 않은 언론이 합작해 오보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북한은 항상 상대의 허를 찌르는 유격대식 전술을 쓴다. 정부 당국은 이를 뻔히 알면서도 “기체에 결함이 생겼다” “발사 기간을 연장한다”는 북한 발표를 그대로 믿은 듯하다. 언론도 북한 발표와 우리 정부의 해석을 믿어도 너무 믿었다. 이게 판단력을 무디게 만들어 모두들 엉뚱한 ‘집단사고’에 빠지고 만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했다면 다른 가능성에 눈을 뜰 수도 있었는데, 그 여지를 스스로 차단했다. 정부와 언론 모두 깊이 반성할 일이다.

 그동안 우리 군은 북한 전역을 면밀하게 감시하고 있다고 장담해 왔다. 하지만 실제는 어떤가. 대부분의 북한 동향에 대한 정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로켓이나 핵실험 등 결정적인 정보는 북한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얻을 수 있는데, 그 수단은 미국의 군사위성이거나 초고도 정찰기 U-2뿐이다.

 물론 우리도 아리랑-3호 위성을 쏘아올렸고, 상업위성을 빌려 쓰고는 있지만 24시간 감시가 불가능하다. 해상도도 낮아 정확한 정보를 얻기 어렵다. 결국 미국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에서 받는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느냐다. 이번 오보 소동의 발단도 결국 분석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진정한 강군이 되기 위한 눈과 머리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 군은 어떤가. 눈은 미국에 의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머리라도 휙휙 돌아가야 하는데, 이것도 여의치 않다.

 미국 탓만 한들 소용이 없다. ‘깜깜이’ 신세는 스스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군사위성을 쏘아올릴 수는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정보 전문인력의 확충이다. 예컨대 국방정보본부장을 이질적인 병과인 보병에 맡기는 인사 관행부터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 중요한 정보업무를 육상전투 담당하는 보병이 맡는다는 건 미군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나마 일 좀 할 만하면 다른 곳으로 옮긴다. 실력 있는 정보맨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북한 로켓 오보 소동처럼 침침한 눈과 흐릿한 머리의 합작품이 또 나오지 않게 하려면 정부·군·언론 할 것 없이 눈과 머리를 가다듬을 일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