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에 미용자격증 … 77세 조리사 3관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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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기능사 합격자 중 최고령 기록을 세운 서태석(71)씨가 11일 자신이 다녔던 수원의 한 미용학원에서 파마 실습을 하고 있다. 서씨는 네 번의 도전 끝에 최근 미용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박종근 기자]

경기도 용인의 서태석(71)씨는 1960년 여고를 졸업한 뒤 2년간 직장생활을 한 걸 빼곤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는 지난해 말 남편을 먼저 떠나보낸 뒤 ‘제2의 인생’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남편의 머리를 다듬어주던 경험을 살려 미용사를 목표로 잡았다. 딸(49)의 권유와 격려도 큰 힘이 됐다.

 하지만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지난 4월 처음 찾은 미용학원에는 중고생과 20~40대뿐이었다. 70대는커녕 60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들·딸·손자뻘 동료 사이에서 열심히 공부했지만 기술은 쉽게 늘지 않았다. 눈은 침침했고 체력도 달렸다. 35분 안에 59개의 파마롤을 말아야 하지만 시간 내에 반도 끝내기 힘들었다. 세 차례 미용기능사 시험에 도전했지만 낙방했다.

 실망 대신 오기가 생겼다. 학원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실습에 몰두했다. 지난달 28일 네 번째 시험을 치를 땐 다리 힘이 빠져 아예 무릎을 꿇고 파마를 말았다. 서씨는 마침내 지난 6일 자격증을 받았다. 현재까지 미용사자격증 취득 당시 최고령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는 “이 나이에도 뭔가에 도전해 성취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너무 기뻤다”며 “집 근처에 조그만 미용실을 차려 가난한 노인·환자들의 머리를 무료로 깎아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기술자격증을 따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다. 11일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65세 이상 기술자격증 취득자는 2007년 260명에서 2011년 569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자격취득자 중 최고령인 이은실(77·제과기능사)씨는 2년 전 한식조리 자격증을 시작으로 제빵과 제과자격증까지 모두 따 ‘3관왕’이 됐다. 강릉의 관동중 교감을 끝으로 교단을 떠난 그는 “바리스타(커피전문가) 자격증까지 딴 뒤 제자들과 조그만 가게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격증에 도전하는 고령자가 늘어나는 것은 평균수명 증가와 학력수준 향상이 주요한 이유로 꼽힌다. 인력공단 자격동향분석팀의 박재현 선임연구원은 “나이가 들어서도 재취업과 자아성취에 대한 욕구가 강해진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더라도 고령자들의 재취업은 쉽지 않다. 지난 6월 소방설비기사(전기) 자격증을 취득한 윤두섭(75)씨는 “지난해 한 회사에 지원했는데 나이가 많아 거절당했다”며 “소방설비점검은 꼼꼼한 노인들이 하기 적당한 일인데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고용정보원 황기돈 박사는 “일할 능력이 있는 고령자들의 채용을 늘리기 위한 제도적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상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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