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jor 스무 살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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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영화의 느낌은 언제나 상큼하다. 때로 불안정하고 어설픈 구석이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지만 첫 영화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설레임 또한 남다른 것이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은 이제 처음으로 장편영화를 만든 여성감독이다. 각기 다른 다섯명의 친구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이 영화는 막 어른들 세계로 진입한 여자아이들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마치 알에서 금방 깨어난 새처럼 이들은 날개짓을 퍼덕이지만 창공으로의 비상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정재은 감독은 영화에 대해 "고양이가 전해주는 창의 경계성, 애완동물과 야생동물 사이의 묘한 경계성을 스무살 여자아이들의 이야기를 담는 방향으로 삼았다. 불안하고 불분명한 경계의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에 걸쳐있는 인물들이 나온다는 점 외에, 사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조금 모호하게 보이는 개성을 지닌다. 이 영화의 강력한 힘은 세밀한 디테일에서 나온다. 감각적으로 포착한 화면들, 때깔고운 영화의 외형은 '고양이를 부탁해'를 끌고가는 엔진 역할을 한다. 핸드폰 문자메시지를 화면 곳곳에 숨겨두는 등 영화는 젊은 세대의 감독이 떠올릴수 있을 법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여럿 배치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여자아이들의 영화다. 태희와 혜주, 그리고 지영 등은 단짝친구들이다. 동창생인 이들은 스무살이 되면서 서로 길이 달라진다. 혜주는 증권사에 입사해 일하고 지영은 유학을 꿈꾼다. 태희는 봉사활동에서 알게된 뇌성마비 시인을 좋아하게된다. 지영이 길잃은 고양이 티티를 보호하게 되면서 이 고양이는 친구들을 묶는 '끈'이 되어준다. 친구들은 차츰 현실의 벽 앞에서 방황하게 되는데 별로 하는 일없이 지내는 태희는 외국을 갈까 고민하고, 혜주는 회사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지영은 갑작스런 사고로 가족을 잃는다.

영화는 하루가 마냥 길고, 지루하기 이를데없는 청춘의 일상을 담는다. 사회에 처음 진입한 젊은이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심리적인 방황, 그리고 이들의 우정을 담고 있는 거다. 영화에서 혜주와 태희, 그리고 지영 등은 각기 나름의 야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고, 유학도 가보고 싶고, 낯선 사람과 데이트도 즐기고 싶다. 하지만 이들은 차츰 자신들의 '무력함'을 발견할 수밖에 없는데 낯설기 이를데없는 어른들 사회의 폭력성 앞에서 때로는 공허감을 느끼곤 한다. 영화에서 '고양이'는 살아있는 애완동물인 동시에 주인공들의 튼실한 우정의 상징으로 쓰인다. 지영에게서 혜주로, 다시 지영에게서 태희로 주인이 바뀌면서 고양이 티티는 인물들 우정을 확인해주고, 튼튼하게 엮어주는 구실을 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대사는 곧, "난 너밖에 부탁하고 의지할 곳이 없단다"라는 의미를 깔고 있는 우정의 키워드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중반까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영화의 '초짜'다운 어설픔은 종반으로 향하면서 역전된다. 이쯤에서 영화는 방황과 좌절을 거듭하고 일탈을 꿈꾸던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길을 개척해가는지, 그리고 우정을 다져가는지에 관한 짧지만 인상적인 보고서 역할을 한다. 영화의 결말은 약간 상투적인 청춘드라마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희망적인 결론을 제시하면서 기운을 북돋는다. 청춘이란 건 힘들지만 그래도 괜찮은거야, 라는 위로를 건네면서. 비록 그것이 알에서 뛰쳐나온 이의 기운찬 날개짓이 아니라 굉음을 과시하는 비행기를 탄 여정이 될지언정 말이다.

국내의 영화음악 전문 프로덕션 엠엔에프는 몽롱한 톤의 영화음악을 들려주면서 영화를 깔끔한 이미지로 빚어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최근 등장한 한국영화 중에서 요란스럽지 않지만, 소중한 재능을 과시하는 작업이다. 만약 예쁘고 귀여운 청춘영화를 따로 꼽는 리스트가 있다면 '고양이를 부탁해'는 아마도 가장 상위에 둥지를 트는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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