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서울시극단 '길 떠나는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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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극단의 '길 떠나는 가족' 은 국내 '인물 드라마' 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인물의 입체화에 실패해 밋밋한 일대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길 떠나는 가족' 은 한국 근대 화단의 거목인 이중섭의 삶과 예술을 다룬 작품. 꼭 10년 전에 김의경 작.이윤택 연출로 초연됐는데, 이번 무대의 연출은 기국서가 맡았다. 전형적인 서사극을 실험적인 작품에 능한 기씨가 맡는 것부터 의아했는데 역량의 한계는 무대에서 드러났다.

연극은 이중섭이 죽었다는 소식이 신문사에 전해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그의 친구였던 구상 시인의 내레이션와 극중 장면이 교차하면서 고난을 겪던 '환쟁이' 의 일생이 전개된다. 식민지 인간의 비애, 일본 여인과의 결혼, 해방, 6.25, 그리고 전후의 비극적 죽음 등.

그러나 이 정도는 동시대를 산 '보통사람들' 의 일생도 비슷했다. 이중섭이 도드라져야 할 부분은 그 고난 속에서 세상과 불화(不和) 하면서 발휘한 예술가적인 천재성이다.

그러나 '길 떠나는 가족' 은 그런 드라마틱한 부분이 너무 약하다. 평전을 읽는 것보다 못한 건조한 전개와 연대기적 서술, 배우들의 도식적인 연기, 상상력이 약한 무대장치, 가난해 보이는 의상 등.

게다가 이런 것들조차 유기적인 연결성이 떨어졌다. 개인 극단보다 비교적 나은 제작 여건의 시극단 작품치고는 무성의했다.

일차적인 원인은 초연 때의 성가에 만족하고 만 듯한 희곡의 구태다. 감각이 낡았으면 연출이라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그것도 따르지 못한 느낌이다.

이중섭의 그림을 투사한 영상의 활용과 그의 심리상태를 고조시킨 무용, 박윤초의 소리 등 연극적 미학의 개발이 엿보인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10월 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02-377-1647.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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