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억 수표 자선냄비에 … 또 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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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60대 노신사가 9일 서울 명동 구세군 자선냄비에 1억570만원권 수표와 동봉한 편지(위)와 지난해 12월 같은 장소, 같은 냄비에 1억1000만원 수표와 함께 들어있던 편지. 필체가 거의 같다. [사진 구세군]

매서운 추위와 경기 침체의 와중에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온정은 여전했다. 잇단 ‘작은 선행’ 릴레이가 강추위에 움추린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있다.

 ◆지난해 최고액 기부자, 올해도 억대 기부

지난 9일 오후 6시25분쯤 서울 명동 입구에 놓인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함에 밤색 체크무늬 정장을 입은 60대 노신사가 다가섰다. 그는 “어려운 노인분들께 써 주세요”라고 말하고는 흰색 봉투를 냄비에 넣었다. 모금함을 지키던 홍선옥(28)씨가 “감사합니다”라고 하자마자 노신사는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구세군은 10일 오전 집계 과정에서 봉투에 1억570만원권 수표가 들어있음을 확인했다. 이 금액은 역대 둘째로 많은 기부금이다. 지난해 12월 4일 같은 장소의 자선냄비에 편지와 함께 들어있던 1억1000만원 수표가 역대 최고액이었다. 구세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기부금이 1억원을 넘은 경우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가 전부”라고 말했다.

 노신사는 봉투 속 편지에서 자신을 ‘신월동 주민’이라고 밝혔다. 이어 “평생 부모님은 이웃에게 많은 것을 나눠줬습니다. 그러나 호강 한 번 못하고 쓸쓸히 생을 마감했습니다. 부모님의 유지를 받들어 작은 씨앗 하나를 구세군의 거룩하고 숭고한 숲 속에 띄워 보냅니다”라고 적었다.

 구세군 홍봉식 홍보부장은 “수표의 발행처와 편지 내용·필적 등으로 볼 때 지난해 1억1000만원 기부자와 올해 1억570만원 기부자가 동일 인물인 것으로 보인다”며 “기부자의 뜻대로 소외된 이웃과 노인들을 위해 소중히 쓰겠다”고 말했다.

 ◆요양비 530만원 찾아준 대학생

이장훈

지난달 30일 오후 10시30분 이승훈(52)씨는 서울 신내동 음식점을 나와 길을 걷다 530만원이 든 손가방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부산에 계신 아버지의 요양비로 쓰기 위해 형제들이 모은 돈이었다. 그는 소방서·파출소에 분실신고를 했다. 1시간쯤 지나 인근 파출소에서 “손가방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파출소로 가면서도 “빈 가방만 돌아오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지폐 한 장도 모자라지 않았다. 신용카드와 다른 물건도 그대로였다. 이씨는 파출소에 남겨진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삼육대 카메카트로닉스(자동차제어공학)과 2학년 이장훈(22)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친구와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서다 길가에서 손가방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한 학기 등록금보다 많은 돈에 처음엔 망설였어요. 하지만 지난 5월 학교 대강당에서 3만원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마음이 무척 쓰렸었는데 그보다 큰돈을 잃은 손가방 주인은 얼마나 괴로울까에 생각이 미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한사코 마다하는 대학생 이씨에게 “그러면 내가 미안하다”며 이씨는 10만원을 주머니에 넣어줬다. 다음 날 부산의 아버지에게 530만원을 전달하고 올라온 이씨는 다시 삼육대 총장에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이장훈씨의 선행이 주변에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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