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고발’ 갑자기 증가 … 까칠해진 공정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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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는 고객 돈을 부실하게 관리한 상조업체 3곳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가 장례비를 법정비율대로 적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상조업체를 제재한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법인과 대표자를 모두 검찰에 고발하는 강도 높은 제재조치를 내렸다. 공정위 관계자는 “허위자료를 은행에 내는 등 고의성이 있고, 당장은 없지만 앞으로 소비자 피해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증권사 소액채권 담합을 적발하고도 공정위는 6개 회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증권사들은 “형이 확정되면 3년간 신규사업 인허가를 받을 수 없어 사업에 지장이 크다”며 선처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경제검찰 공정위의 칼날이 부쩍 날카로워졌다. 최근 공정위 의결서엔 ‘검찰 고발’ 조치가 자주 등장한다. 2007년 리베이트를 제공하고도 매출액이 적어 고발을 피했던 삼일제약은 지난달 그와 비슷한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광주 하수처리장 시설 입찰을 담합한 4개 대형 건설사 역시 최근 모두 검찰에 고발됐다.

 검찰 고발은 공정위가 내릴 수 있는 최고 수위의 제재다. 그동안 공정위에서 검찰 고발은 흔치 않았다. 공정위 통계연보에 따르면 1981년 공정위 설립 뒤 지난해까지 처리한 사건 6만여 건 중 검찰 고발은 529건뿐이다. 전체의 0.9%에 그친다. 가벼운 사건은 경고, 중대한 사건은 ‘시정명령+과징금’이 일반적인 제재 수위였다.

 올 들어 검찰 고발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는 뭘까. 경제민주화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게 안팎의 해석이다. 검찰 고발 없는 행정처분은 ‘솜방망이 제재’라는 여론이 올 들어 거세졌다. 4대 강 입찰에 담합한 건설사를 한 곳도 검찰 고발하지 않은 것도 빌미가 됐다. 이후 SK그룹의 일감 몰아주기(7월), 신세계그룹의 부당 지원행위(9월) 등 굵직한 사건에서도 검찰 고발은 없었다.

 그러자 “공정위 제재가 미흡하다”며 시민단체가 나섰다. 공정위가 시정명령이나 과징금에 그친 기업을 잇따라 검찰에 고발했다. 4대 강 복원 범국민대책위원회는 현대건설 전·현직 대표이사 등을, 경제개혁연대는 신세계·이마트 경영진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서울YMCA는 호주산 소갈비를 최상급으로 속여 판 쿠팡을 사기 혐의로 고발조치했다. 강정민 경제개혁연대 연구원은 “국민 법 감정에 비춰볼 때 공정위 제재 수준이 매우 미흡해 시민단체가 나섰다”고 말했다.

 더불어 공정위가 가진 ‘전속고발권’을 없애자는 목소리도 커졌다. 현재 공정거래법 사건은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검찰이 나설 수 없다. 이를 없애 불공정행위를 강하게 다스리자는 논리다. 이미 박근혜·문재인 후보 모두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를 약속했다. 단 두 후보의 접근법은 조금 다르다. 문 후보는 중대 범죄에 한해 일부 전속고발권을 폐지한다는 입장인 데 비해, 박 후보는 중소기업청장·감사원장 등도 고발권을 갖게 한다는 내용이다.

 이런 여론 움직임에 공정위는 뒤늦게 “검찰 고발을 대폭 늘리겠다”는 자구책을 내놨다. 소비자 피해가 크고 악의적인 위법행위는 의무적으로 검찰에 고발하는 쪽으로 법을 바꾸겠다고 나선 것이다. 전속고발권 폐지는 막아야 한다는 위기감에서 서둘러 대안을 제시한 것이다. 최근 검찰 고발이 부쩍 늘어난 것도 이런 움직임과 궤를 같이한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기업의 부담과 법 집행의 혼란을 고려할 때 전속고발권은 유지하되 검찰 고발을 대폭 확대하는 게 실질적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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