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중국 경제 대장정] '부자 꿈에 취한 대륙' 새로운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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翻身不忘毛澤東

致富更思鄧小平.

중국 변혁을 이룬 毛를 잊지 말고, 중국을 부자로 만든 鄧을 더욱 생각하자는 이 구호는 쓰촨성 광안시 鄧의 생가 입구에 붙어 있었다. 번신의 원음을 빌린 『판선(Fanshen)』이란 제목의 책에서 윌리엄 힌턴은 "모든 혁명은 새로운 구호를 창조한다. 중국 혁명은 전혀 새로운 어휘를 창조했다.

그 어휘에서 가장 중요한 구호가 '판선' 이다" 라고 썼다. 번신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몸을 뒤집는다는 뜻이지만 저자의 설명으로는 수억의 중국 농민이 "제 발로 서고, 지주의 족쇄를 깨뜨리고, 땅과 가축과 농기구와 집을 얻는" 것이고, 그래서 "새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바로 혁명 아닌가?

상 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 구가(舊家)에서 관람한 임정 다큐멘터리 영화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휘호가 있었다.

물을 마시면서 그 근원을 생각하라는 이 말은 본래 나라가 망해 28년이나 서위(西魏)에 억류된 양(梁)의 사신 유신(庾信)의 탄식이었지만, 여기서는 나라 잃은 백성에게 조국 광복을 잊지 말라는 김구(金九)선생의 간곡한 호소였다. '치부사등(致富思鄧)' 은 바로 그 음수사원의 차용인 듯하다. 치부 수단으로 鄧은 개혁과 개방을 내세웠다.

그 길을 통해 정녕 부자가 되는지도 의문이지만, 압제로부터의 해방이란 선결 과업이 없이 과연 그 개혁과 개방이 가능했겠느냐는 것이 나로서는 더 관심사였다. 그러니 번신의 毛가 치부의 鄧보다 적어도 내게는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리처드 에번스는 중국 근.현대사의 최대 사건으로 1911년의 신해혁명, 49년의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8년의 덩샤오핑 시대로의 전환을 들었다. 다른 것은 그만두더라도 쑨원(孫文)과 毛와 鄧의 치적이 동렬에서 평가된다는 암시가 나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처음의 두 계기가 각기 봉건왕조 타파와 사회주의 국가 수립에 있었으니, 그렇다면 鄧의 개혁은 앞선 혁명에 대한 '반혁명' 이어야 하는데, 그 변증법이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곤혹스런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쓰촨성 광한(廣漢)시의 삼성퇴(三星堆) 전시관에는 1920년대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고촉(古蜀)의 유물들이 3천5백여년 전의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 오랜 삶의 궁리를 비벼낸 민족이 그 넓은 땅과 그 많은 자원을 갖고도 굶는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필시 그것은 모자라서가 아니라 잘못 나누었기 때문이리라.

가렴주구(苛斂誅求)의 횡포가 없었다면 어찌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나왔겠는가? 대지에 희롱당하는 왕룽의 가난이나 붉은 수수밭이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주얼의 비극 역시 벽안의 소설가나 신세대 영화 감독의 허구적 묘사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고르게 나누려는 毛의 혁명은 부자가 되자는 鄧의 개혁보다 순서는 물론 그 관념에서도 앞서야 옳다.

확실히 중국은 지금 부자가 되는 꿈에 취해 있다. 중국과학원의 뉴원위안(牛文元)교수는 지난 2월 완성한 '가지속(可持續)발전 전략 보고서' 내용을 우리에게 다시 소개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5천달러에 이르는 시점을 현대화의 목표로 설정할 때, 31개 성 및 성급 시와 자치구 가운데 상하이는 가장 먼저 2015년에, 베이징(北京)은 그 다음 2018년에 여기 도달한다.

건국 1백주년을 맞는 2049년에는 13개의 성이 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중국 인구의 42%가 중진국 수준의 생활을 영위한다. 생전에 구상한 鄧의 현대화 설계 역시 인구 15억에 1인당 소득 4천달러를 곱한 국내총생산 6조달러 달성을 '세계의 앞자리에 서는' 시점으로 상정했는데, 그 시점이 대강 2050년이다.

여행 도중 상하이에서 이런 기사를 읽었다. 중국 관영 정치 주간지 '요망(瞭望)' 의 보도에 따르면 경제.군사.자원 등을 토대로 비교한 '종합 국력' 에서 중국은 지난해 세계 9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10년에는 영국을 제치고 8위, 2020년에는 호주와 러시아를 누르고 6위에 이른다. 2050년에는 미국과 일본 다음의 3위를 차지하는데, 미국을 제치기 위해 과도한 군비 경쟁에 나설 뜻이 없다고 짐짓 여유까지 보였다. 거기에 하나 다행인 것은 지난해 11위에 머무른 한국이 2020년까지 그럭저럭 10위를 지킨다는 전망이었다. 그저 그게 맞아만 다오!

우리 취재에 응한 많은 사람들은 중국이 미국보다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꿀릴 것도 없다" 는 자부가 대단했다.

가 난해도 꿀리지 않는 그 자부의 원천은 무엇일까?

내심 毛를 떠올리며 그에 대한 평가를 묻는 나의 질문에 간쑤(甘肅)성 판공실의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인민 누구에게 물어도 같은 답이 나올 것입니다. 毛주석도 인간이기에 실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 그 대답은 적어도 나의 여행 동안 전천후 모범 답변이었다. 선전 롄화산(蓮花山) 공원에서 중국 유일의 鄧 동상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70대 신사한테 다가가 鄧에 대한 수인사 덕담에 이어 毛 얘기를 꺼냈더니, 그들 일행은 '푸' 하고 우리가 민망할 만큼 갑작스레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즉시 정색을 하고는 毛의 후기 착오가 개국(開國)의 업적을 대신하지는 못한다고 깍듯이 주석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상하이 굴지의 에너지 재벌 총수였다. 하다 못해 毛의 핍박으로 죽은 류사오치(劉少奇)의 기념관에서 만난 40대의 과학연구가조차 예의 그 모범답안을 되풀이했다. 여기서 그만 짜증이 났다. 젠장 뭐가 이래. 13억이 짜고 치는 고스톱도 아니고…. 아니 아니지, 나의 착각일 수도 있지.

우 리가 만난 중국인 대부분은 毛와 鄧 양자의 공과를 단계적으로 - 그때는 毛가 필요했으나 지금은 鄧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 설명하고 있었다. 그거야 어떤 경우에도 책임 추궁을 면하려는 역사 교과서 편수관들의 닳고닳은 지혜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베낀다면 취재가 무슨 소용이랴. 그래서 행여 鄧의 개혁이 毛 혁명의 성과를 부정하는 경우는 어떻게 되느냐고 집요하게 물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응답자들의 천편일률적 대답이었다.

그럼에도 毛의 일차적인 공적과 이차적 과오의 순위가 바뀔 여지는 항상 열려 있으며, 권력이 후진타오(胡錦濤) 세대로 넘어가면 본격적인 毛 비판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선배들의 이데올로기 유산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이들 '제4세대' 시대에는 鄧조차 무사하지 못할 것이란 유언비어가 우리 취재망에 잡히기도 했다. 인류의 5분의 1을 놓고 도박했던 毛와 鄧, 그들은 서로를 필요로 했던 동지인가?

아니면 결코 같이 갈 수 없었던 적인가?

여행의 화두치고는 출제가 아주 고약했다.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 취재일정

인천국제공항 출발(8월 20일 오전)→베이징(北京)→간쑤(甘肅)성 란저우(蘭州.22일)→청두(成都.24일)→쓰촨(四川)성 광안(廣安)→충칭(重慶)→청두→난창(南昌.28일)→장시(江西)성 루산(廬山)→난창→광둥(廣東)성 선전(29일)→푸젠(福建)성 샤먼(厦門.31일)→상하이(上海.9월 2일)→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장쑤(江蘇)성 쑤저우(蘇州.3일)→장쑤성 장자강(張家港)→상하이→베이징(5일)→후난(湖南)성 창사(長沙.6일)→사오산(韶山)→창사→선전→홍콩(7일)→기내 1박 후→서울 도착(8일 오전)

*19박20일 동안 약 1만2천8백㎞(3만2천리)를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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