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살려낸 '뉴키즈파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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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리 컬킨을 단숨에 스타덤에 끌어올렸던 영화 '나 홀로 집에' 의 인기 비결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나쁜 어른 혼내 주기'다. 꼬마에게 휘둘려 정신을 못차리는 어른 악당. 상식을 뒤흔들어 버린 설정이 주는 통쾌함에 아이건 어른이건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젠 아이들에게 혼줄이 나는 어른을 보는 일은 영화 속에서만 있지 않다. 현실에서 얼마든지 본때를 보여주는 '뉴 키즈' 를 만날 수 있다.

워싱턴과 뉴욕을 강타한 동시다발테러로 세계가 넋을 잃고 있을 때 국내 연예계는 최고 인기댄스그룹5인조 god의 해체 위기로 소용돌이쳤다. 소속사인(주)사이더스가 그룹 리더 박준형씨를 톱스타 한 고은씨와 공개적인 연인사이로 발전하면서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이유로 사전 통고도 없이 전격 퇴출시킨 탓이다. 한씨의 당혹-god 멤버의 잠적-멤버 4명의 '퇴출 반대' 기자 회견-박씨의 심경고백 등 한바탕 소동을 치른 끝에 18일 소속사의 퇴출 공식철회로 일단락됐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단지 사랑하는 사람과 있었다는 것 뿐" 이라며 눈물을 훔쳐야 했던 박씨를 불명예의 늪에서 끌어올린 일등공신은 바로 열혈 10대 팬들이었다. '퇴출'이라는 철퇴가 가해지자 이들은 2백60여개 god 팬클럽을 하나(!)로 묶어'god 팬 사이트 연합'을 결성했다. 뿐인가. 기자회견을 열어 "퇴출의 근거가 지극히 개인적인 사생활일 뿐이며 철저하게 기획사의 독단으로 결정됐다는 것에 분노한다"며'god의 팬이자 대중음악 소비자'임을 내세워 사이더스에 항의하고 퇴출 조처의 즉각 철회를 요청했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퇴출반대 서명운동, 사이더스가 제작한 문화상품 불매운동, 온라인시위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항하겠다는 말과 함께. 나아가 이들은 그들의 '선전포고'가 결코 엄포가 아님을 시사하는 행동력을 보여주었다. 일간종합지에 'god가 다섯일 때 우리는 절대적인 지지자가 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전면광고(!)를 내고 god의 자유로운 음악활동 보장, 팬들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팬사이트 연합을 통해 모금한 6천여만원의 힘이다.

과연 이들은 단순히 '연예인을 좇는 극성파들'일 뿐일까. 나는 이들에게서 '새로운 10대'를 읽는다. 이제 10대들은 부당하건 안하건 어른들의 일방적인 조치에 무조건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이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재단하며 불합리하다고 판단한 어른의 조처에는 서슴없이 반기를 든다.

교칙에 의한 획일적인 두발관리에 반발하여 두발자유화를 외쳤던 '노 컷' 운동을 사회적 이슈로 끌어올리며 각급학교에서 '가위를 든 교사' 를 사라지게 한 것도, 주최측이 공연을 임의변경해도 속수무책이던 관중의 태도에서 벗어나 당당히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도 다 이들 10대였다.

'새로운 10대'가 지닌 힘의 원천은 인터넷이다. 컴퓨터 활용이 자유로운 뉴 키즈들은 인터넷을 통한 연대에 익숙하다. 가상공간과 친숙한 이들은'일면식도 없는 이'에 대한 거부감도 없다. 물리적인 거리는 아예 인식 밖이다. 중요한 것은 관심사가 같으냐는 것 뿐이다. 더욱이 이들 뉴 키즈에게는 지난날 10대들과 달리 자금력도 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푼돈으로 장충체육관을 빌려 H.O.T 전멤버 토니 안의 생일 파티도 열 정도다.

사이버 공간에서 세력을 구축하고 오프라인 세상에서 행동력을 보여주는'뉴 키즈의 파워'는 이제 현실적으로 증명됐다. 방송사와 싸워 이긴'공룡' 기획사들도 항복할 정도로 뉴키즈 파워는 강력하다. 그러나 그 힘의 주체가 아직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10대라는 점에서 때로는 잘못 행사될 우려도 없지 않다.

강력한 힘일수록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절제의 미학을 가르치는데 어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과 뉴 키즈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리고 그 몫은 어른이다.

겉모습이 비슷하다고 해서 속까지 같지는 않다. 오늘의 10대는 어른들이 지나온 10대와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서 살고 있음을 어른들은 빨리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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