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친구'덕에 살맛 나는 감초연기 정운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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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친구' 한 편으로 샛별로 뜬 정운택(26) . 수업 중 선생님의 질문을 피하기 위해 앉은 자세로 책상을 들고 새앙쥐처럼 이 줄 저 줄 옮겨 다니는 익살맞은 연기는 압권이었다.

장동건.유오성 등 주연 못지 않게 그는 '친구' 에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 인기를 업은 그는 지금 일급 배우가 부럽지 않다.

지난 15일 첫 방영한 KBS 주말극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연출 김용규) 에서 주인공 정준의 친구로 등장, 특유의 코믹한 연기를 뽐냈다. 드라마 출연은 처음이다.

촬영중인 코믹 영화 '두사부일체(頭師父一體) ' (윤제군 감독) 에선 정준호.정웅인과 함께 주연을 맡았다. 열정은 넘치지만 조금 모자라는 의리파 깡패역이다. 얼마전에는 이정재와 나란히 카드사 CF까지 찍었다. 요즘 그는 차안에서 토막잠으로 모자라는 수면을 보충해야 할 만큼 시간을 쪼개가며 산다.

하지만 불과 1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오늘날 그의 모습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스타가 돼 있더라' 는 표현은 이런 경우에 유효한 걸까.

1994년 배우가 되겠다고 상경했지만 7년간 엑스트라만 했다. 화면에 얼굴이 정면으로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엑스트라만으로 생계 유지가 안돼 골프장 청소, 우유 배달, 차에 광고전단 꼽는 일 등 안해본 게 없다.

그래도 배우의 꿈을 접을 수 없어 주말이면 연기학원을 다녔고 98년에 '세일즈맨의 죽음' 으로 마침내 연극무대에 이름을 걸고 섰다.

그 후 1년에 네 작품 정도 꾸준히 출연했다. 점차 연기력을 인정받는 것은 신나는 일이었지만 연기만으로는 1년 수입이 고작 20만원에 불과한 현실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다.

"소주를 마시고 싶어도 돈이 없어 술집에 못갔죠. 친구들이랑 마로니에 공원에 앉아 깡소주 많이 마셨어요. 정말 얼마전 일이었는데…. "

"지난해와 비교할 때 가장 달라진 점이 뭐냐" 라는 물음에도 "먹는거요. 요즘엔 제 능력으로 삼겹살은 맘 놓고 먹을 수 있으니까요" 라고 대답한다.

슬쩍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그동안 감내한 고생이 짐작된다.

요즘도 끼니 거르는 게 싫어서 아무리 바빠도 꼬박 세끼를 챙긴다는 그는 "무심코 건너 뛴 한 끼 평생 가도 못 찾아 먹는다" 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드라마건 영화건 무조건 열심히 해야죠. 아직 신인이라 그런지 동료 배우들과 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즐겁습니다. 영화 촬영장에서 정준호.정웅인 형을 보면 아직도 마음이 설레고 방송국에서도 좋아하는 탤런트를 보면 사인을 받고 싶으니까요. "

그는 이제 시작이란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인터뷰 내내 "이제 시작이다" "어떤 배역이든 자신 있다" "이제 출발인데 '친구' 로 얻은 인기가 무슨 소용이냐" "배우로서 할 게 너무 많다" 등의 말을 여러차례 강조했다.

기자를 만난 날도 전날 밤새 드라마를 촬영했다. 뭔가 해보겠다는 의욕으로 무장된 그에겐 피로가 오히려 힘이다.

"좀 쉬어야 겠네요" 라는 말에 그는 녹음이 있어 일터로 가야 한다고 했다. '친구' 가 펴놓은 잔치판은 이제 끝났다. 그가 드라마로도 일을 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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