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빵집 “대기업이 생존권 위협” 프랜차이즈점 “우리도 영세 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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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프랜차이즈 제빵업체의 불공정행위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기업의 빵집 진출 금지 등을 촉구했다. [연합뉴스]

빵집 점주들이 둘로 갈라섰다. 동네 빵집과 프랜차이즈 빵집으로다. 동네 빵집과 대기업 프랜차이즈 본사가 대립하던 것이 이젠 점주 사이의 갈등으로까지 번진 것이다. 동네 빵집은 “대기업 빵집 진출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하고, 프랜차이즈 빵집 점주들은 “우리도 같은 자영업자”라며 “대기업이 손을 떼게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발하고 있다.

 전국 4000여 빵집 운영자들로 구성된 대한제과협회는 5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네 빵집의 생존을 위해 빵집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 대기업의 진출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서중(59) 대한제과협회장은 “프랜차이즈 빵집과의 경쟁에 못 이겨 동네 빵집 주인이 자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밝혔다. 부산에서 13년간 동네 빵집을 하던 정모씨가 주변에 늘어난 프랜차이즈 빵집 때문에 장사가 안 돼 임대료 등이 밀리자 지난달 2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이선구 협회 부회장은 “프랜차이즈 대기업은 건물주에게 임대료를 더 주겠다고 해 동네 빵집을 내모는 등 불공정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기자회견 중에 삭발을 한 김영희 제주지회장은 “17살에 제빵기술을 배워 그동안 밥은 먹고 살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대자본을 앞세운 프랜차이즈 빵집이 사방을 포위해와 굶어 죽을 지경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전국에서 온 200여 명 제빵사가 ‘프랜차이즈 빵집 압력행위 동네 빵집 다 죽인다’는 글귀 등이 쓰인 어깨띠를 두르거나 피켓을 들고 참석했다. 배인필 인천지회장은 “동네 빵집은 코흘리개 업종”이라며 “여기에 대기업이 뛰어들어 영세자영업자들 가슴을 찢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0년 1500여 개였던 프랜차이즈 빵집은 최근 5200여 개로 늘었고, 그사이 동네 빵집은 1만8000여 개에서 4000여 개로 줄었다. 제과협회는 “동네 빵집이 감소하면서 8만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했다.

 제과협회 기자회견에 앞서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100여 명은 4일 서울역에서 ‘프랜차이즈 자영업자 생존권 보장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 3000여 명과 프랜차이즈 빵집에서 일하는 3만여 명을 대표해 개최한 회의였다. 이들은 “프랜차이즈 빵집 가맹점주도 영세자영업자이자 동네 빵집”이라며 “먹고살기 위해 우리도 하루 12시간 이상씩 일하는데 문을 닫으란 것이냐”고 항의했다. 한 파리바게뜨 점주는 “대한제과협회 회원에서 탈퇴하고 회비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제과협회에는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1000여 명도 가입해 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는 SPC(파리바게뜨)나 CJ푸드빌(뚜레쥬르)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SPC 등은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제과협회와 상생 방안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지난주 제과협회와 상생 협약서를 체결하기로 합의했다”며 “그러다 갑자기 개인 빵집 발전기금으로 50여억원을 요구해 거부했더니 기자회견을 연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서중 회장은 “양측이 발전기금을 논의한 건 맞지만 현실적인 대안이 아니었다”며 “발전기금보다 프랜차이즈 빵집의 확장 자제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정훈·채승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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