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릴레이] 덕수궁 돌담길 걸으면 헤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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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훌쩍 넘긴 요즘도 우리 사회에선 ''현대인의 미신'' 이라 일컬어지는 속설들이 난무한다. 예컨대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 는 속설은 요즘도 유효한 모양이다. 멀쩡히 걸어오던 연인들이 돌담길 근처만 오면 반대편 길로 건너 가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여학생들 사이에선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는 말과 함께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는 것이 유행이다.

**확률 높은 ''통계적 우연'' 일 뿐

이런 속설들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려니와 종종 그럴듯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이어서 들어맞는 게 아니다.

단지 ''통계적인 우연'' 일 뿐이다. 덕수궁 돌담길은 1960~70년대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던 곳으로, 연인이면 누구나 한번쯤 걷는 길이었다. 그리고 커플이 깨질 확률은 사랑이 이루어질 확률에 비해 얼마나 높은가. 다시 말해 일어날 확률이 높은 두 사건을 붙여 놓았으니 자주 맞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봉숭아물'' 도 마찬가지다. 여학생들이 봉숭아물을 들이는 시기는 주로 5~8월 사이. 첫눈이 오는 시기는 대략 12월초다. 하루에 1㎜씩 자라는 손톱이 그때까지 남아 있기도 힘들 뿐더러 봉숭아물이 석 달 이상 탈색되지 않을 확률도 높지 않다.

첫사랑에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작은지는 굳이 말하지 않겠다. 결국 첫눈이 오기 전에 봉숭아물은 사라지고 첫사랑에도 성공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속설들은 그래도 멋과 낭만이 있어 봐줄 만하다. ''돈'' 문제가 걸린 주식시장에 가면 태양의 흑점 주기가 주식 시세와 관련 있다거나, 돼지고기 값이 오르면 주식값이 오른다는 등 근원을 알 수 없는 속설들이 사람들을 홀린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프로미식축구 결승전 슈퍼보울 경기에서 내셔널 콘퍼런스 소속팀이 이기면 경기가 좋아지고, 아메리칸 콘퍼런스 소속팀이 이기면 나빠진다는 속설이 있다. 경제가 호황이면 스커트 길이가 짧아진다는 주장도 미국 패션가에서 나온 말이다.

이런 주장들 역시 ''통계에 관한 오해'' 에서 비롯된 것이다. 두 변수가 비슷하게 움직인다고 해서 인과관계를 오해하는 실수는 자칫 심각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몇해 전 어느 주부대상 TV프로를 보니 한 전문가가 ''패스트푸드의 유해성'' 을 설명하며 "청소년들이 패스트푸드를 많이 먹기 때문에 더 폭력적" 이라는 주장을 폈다.

요즘 애들은 10년 전에 비해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먹는다. 또 10년 전 청소년보다 더 폭력적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가 청소년들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는 것이다. 그는 페스트푸드의 화학조미료가 주범이라는 주장도 했다.

**因果 따지는 합리적 사고 길러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말이 전문가의 입을 통해 ''과학'' 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 전달되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근거도 알 수 없고, 근원지도 모른 채 도시를 떠도는 속설들. ''그냥 하는 얘기'' 라고 웃어넘기지 말고 합리적인 사고로 꼼꼼히 따져 보자.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연구교수

◇ 이번호부터 임경순(포항공대.과학사)교수와 정재승(고려대.뇌과학)연구교수가 과학에 얽힌 사실을 번갈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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