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담화 수정 서두르지 않겠다” 아베, 극우 공약 역풍에 속도조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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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가 되면 고노(河野) 담화를 뜯어고치겠다고 주장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가 “서두를 일이 아니다”고 톤을 낮췄다. 지난달 30일 일본 언론과의 합동 인터뷰에서다. 1993년 발표된 고노 담화는 일본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담화다.

 ‘고노 담화를 어떻게 고칠 것이냐’는 질문에 아베는 “내용이나 형식을 지금부터 검토할 것이며, 그렇게 서두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전문가들의 지혜를 빌려가면서 논의를 진행시킬 것” “(새로운)담화가 될지, 각료회의 결정이 될지, 표현을 어떻게 다듬을지도 (전문가의 지혜를 빌려)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일자에서 “아베가 고노 담화 문제에 대해 궤도를 수정했다”고 보도했다.

9월 자민당 총재 경선 때부터 “후손들이 ‘위안부 강제동원’이란 불명예의 짐을 계속 지도록 할 수는 없다” “고노 담화를 폐기하고 새로운 담화를 내야 한다”고 주장해온 아베가 ‘전문가의 지혜를 빌리겠다’고 밝힌 건 입장이 좀 후퇴한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분석했다.

 아베는 그러나 같은 날 당수토론회에선 “고노 담화는 사기꾼 같은 사람이 쓴 책이 마치 사실처럼 퍼져서 벌어진 일”이란 망언을 반복했다. 다시 말해 ‘고노 담화가 잘못됐다는 인식엔 변화가 없지만, 주변국의 눈치를 봐가며 속도는 좀 조절하겠다’는 게 아베의 입장으로 보인다.

최근 자민당이 발표한 극우 일변도 공약이 역풍을 맞고 있다는 현실도 고려한 듯하다.

한편 인터뷰에서 아베는 총선 뒤 일본유신회와 연계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 집권당인 민주당에 대해선 “민주당은 노동조합과 교원노조 등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자민당과는 기본 노선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반면 “일본유신회와의 연계는 선택지 중의 하나”라고 긍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일본유신회를 이끄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90CE>) 대표도 최근 “자민당이 과반에 못 미칠 경우 꼭 필요한 일에는 협조할 것”이라고 자민당에 추파를 던졌다. 두 정당은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행사’ 등의 우익 공약을 공유하고 있다.

실제로 공조가 이뤄진다면 자민당의 아베, 일본유신회의 이시하라와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대표대행 등 극우 3인방이 의기투합하는 모양새가 된다.

◆ 고노 담화=일본 정부가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명의로 발표한 담화. “과거 위안부 이송에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고, 감언·강압 등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관헌들이 직접 가담한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을 전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일본군 위안부들의 강제 연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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