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사람들' 그들만의 사랑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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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최고의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몸을 낯췄다. '에린 브로코비치' 의 맹렬 여성역으로 올해 골든글로브.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휩쓸었던 그가 '아메리칸 스윗하트' 에선 특급 스타인 여동생을 졸졸 따라다니며 온갖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시녀' 로 전락했다.


할리우드 여배우와 영국 헌책방 주인의 사랑을 그린 '노팅힐' 에서 보여줬던 우아한 자태도 벗었다. 잠깐이지만 뚱뚱보 처녀로도 나온다. 몸부게가 30㎏이나 불어난 모습을 볼라치면 슬며시 가벼운 웃음이 스며나온다.

하여튼 사랑의 결실을 따는 행운은 그녀에게 돌아간다. 드라마.영화에서 두고두고 우려먹는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여동생을 물리치고 사랑의 종착지에 안착하기 때문이다.

줄리아 로버츠의 동생 역은 캐서린 제타 존스가 맡았다. 마이클 더글러스의 부인으로도 유명한 존스는 '마스크 오브 조로' '트래픽' 에서 보여줬던 강인한 마스크를 벗고, 사랑에 울고 웃는 심술꾸러기 배우로 나온다. 사랑을 둘러싼 둘 사이의 심리전이 쏠쏠하게 재미있다.

'아메리칸…' 은 이처럼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을 따르면서 자신도 모르게 찾아오는 사랑의 불가피성을 얘기한다. 반면 영화의 외투는 제법 파격적이다.

사랑이라는 당의정으로 분위기를 끌어가되, 겉으로는 할리우드라는 '초대형 영화공장' 의 뒤켠에서 벌어지는 홍보전쟁에 앵글을 맞춘다. 시사회를 고급호텔에서 열고, 출연 배우들의 스타 이미지를 극대화하고, 언론의 관심을 무한대로 끌어내는 등등.

"기자들에게 고급 가방을 선물해라"
"흥행을 위해선 배우의 시체까지 팔아먹을 사람들" 이란 노골적인 대사도 등장한다.

감독 존 로스는 20세기 폭스.월트 디즈니 등 할리우드 굴지의 영화사를 경영했던 인물. 그런 경험이 영화에 요령있게 녹아있다.

좋게 보면 관객을 현혹해 수익을 최대한 짜내려는 영화업계의 후안무치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으로 비친다. 영화 흥행을 둘러싼 흑막을 걷어내고, 그것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뤄지는가를 일반 관객에게 투명하게 보여주는 정직함으로도 볼 수 있다.

관객들은 돈을 향해 돌진하는 영화사와 배우들의 행태를 보고 일말의 염증까지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마저도 고도의 상업전략이라면□ '아메리칸…' 에선 영화의 상업성이 갖는 폐해, 영화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별로 찾을 수 없다. 미국 중산층의 붕괴를 그린 '아메리칸 뷰티' (샘 멘데스 감독) 가 '뷰티(미) ' 의 역설적 측면을 해부한 반면 '아메리칸…' 은 제목 그대로 '스윗하트(연인) ' 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오락영화다.

영화계의 이면(裏面) 에 대한 묘사는 이런 큰 틀을 받쳐주는 보조장치 정도로 밀려나 있는 것이다.

영화는 최고의 스타 부부였던 그웬(캐서린 제타 존스) 과 에디(존 쿠삭) 가 결별하고, 이들의 재회를 대규모로 이벤트화해 영화사를 재건하려는 제작자(스탠리 루치) 와 홍보 담당자(빌리 쿠삭) , 그리고 그웬의 언니 키키(줄리아 로버츠)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대작을 만든다며 편집본을 제작사에도 공개하지 않고, 막상 시사회장에서는 촬영장에서 발생했던 감독과 제작자의 갈등, 성과 관련된 배우들의 농담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틀어댄 괴짜 감독(물론 현실성은 제로지만) 의 캐릭터가 신선하다. 그웬을 남편에게서 빼앗은 스페인 배우 역으로 나온 행크 아자리아의 딱딱한 영어 발음도 양념거리다. 15세 관람가.


할리우드 영화판의 과감한 해체. 그러나 도착지는 결국 영화가 벗어나려 했던 바로 그 자리. 괴짜 감독의 '영화 속 영화(액자영화) ' 가 더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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