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죄 씌워 처형…北김정은 '피의 숙청'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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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지난 21일 국가안전보위부(우리 국가정보원)를 방문해 김창섭 정치국장(왼쪽)과 함께 보위부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최근 북한 내 반체제 세력의 존재를 이례적으로 거론하며 체제 단속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김정은은 지난 23일 전국 분주소(分駐所·우리의 파출소) 소장회의 참가자와 전체 인민보안원(경찰)에게 보낸 축하문에서 “혁명의 수뇌부를 노리는 적들의 비열한 책동이 우심해지는 첨예한 정세의 요구에 맞게 모든 인민 보안사업을 혁명의 수뇌부 사수전으로 확고히 지향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소요동란을 일으키려 악랄하게 책동하는 불순 적대분자들, 속에 칼을 품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눈에 쌍심지를 켜고 모조리 색출해 가차없이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했다. 김정은은 “백두산 절세위인(김일성·김정일을 지칭)의 동상 등에 대한 경비보안 대책을 철저히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는 26일 열린 전국 사법검찰일꾼 열성자 대회에도 서한을 보내 “비사회주의적 현상의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고 이런 자들을 엄격히 다스리라”고 촉구했다.

 김정은은 이에 앞서 보위기관 창립절을 맞아 국가안전보위부를 방문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지난달 7일(북한 보도 기준) 보위부를 방문했을 때는 “인민들이 적들의 마수에 걸려들지 않도록 보호해주며, 어리석게도 딴꿈을 꾸는 불순 적대분자들은 단호하고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은이 40여 일 만에 보위부를 재차 방문하고, 김일성·김정일 동상에 대한 테러 가능성까지 공개 언급한 건 이례적”이라 고 말했다.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8년 이후 김정은이 후계자로 부상하는 과정에서 노동당과 군부 고위 인사들이 간첩 혐의 등으로 잇따라 숙청된 것도 북한 내부의 이상징후 때문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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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은 김정은이 후계자이던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시행했다 주민 반발로 실패하자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을 이듬해 1월 처형했다. 후계자의 업적으로 삼으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경제관료인 박남기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다. 국가안전보위부 실세로 김정은 체제 구축에 공헌한 유경 부부장도 비슷한 시기에 간첩죄로 총살당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피의 숙청은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지난해 12월 김정일 장례식 때 운구차 행렬에 섰던 우동측 보위부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인사에서 숙청당했다. 또 김정은의 ‘군부 과외교사’로 불렸던 이영호 총참모장도 7월 전격 해임되면서 행적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박남기 등의 숙청 사실을 담은 『혁명대오의 순결성을 강화해 가시는 나날에』란 책자를 간부교육용으로 발간한 것으로 조선중앙TV가 지난달 11일 보도했다. 북한은 최근 보병군단장 9명 중 6명을 교체하고 7월 임명된 현영철 총참모장을 차수에서 대장으로 강등하는 등 군부 인사에 대한 길들이기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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