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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엘리트 장교서 중국 경제 브레인으로
‘망명자에서 세계은행 부총재로.’ 중국 정부의 경제정책 싱크탱크인 베이징(北京)대 중국경제연구센터(CCER) 린이푸(林毅夫·56·사진) 주임의 인생유전이다. 그는 대만군 장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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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 희롱하는 수백 개의 연
사진 · 타이베이 AFP=연합뉴스 이파리 연(鳶), 날치(飛魚) 연, 사람 얼굴 형상의 연….뜻밖에도 수백 개의 연을 ‘친구(?)’로 갖게 된 장제스(蔣介石, 1887~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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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존칭
대만에서 국민당의 권위가 한창 주가를 올릴 때다. 철권으로 대만을 통치하던 장제스(蔣介石)와 그를 이어 등장한 아들 장징궈(蔣經國)의 호칭이 눈길을 끌었다. 작고한 장제스는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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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당 정부의 황금 수송 大작전
상하이 중앙은행 직원이 대만으로 보낼 황금을 점검하고 있다. [김명호 제공] 1980년대 말 국제적인 대기업도 없고 관광이 주 수입원인 줄 알았던 대만의 외환보유액이 일본을 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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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의 태두 웡원하오의 굴곡진 삶
1957년 5월 광산 노동자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찾은 산시(陝西)성의 한 광산에서 식사하는 여공들과 담소를 나누는 웡원하오(가운데 안경 쓰지 않은 사람). [김명호 제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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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靑의 첫번째 남자, 黃敬과 그의 가문
학생운동 영수 시절 베이징의 전차 위에서 연설하는 황징. 김명호 제공 톈진 사람들은 지금도 황징(黃敬·兪啓威) 얘기만 나오면 명시장이었다고 찬양한다. 그는 초대 시장이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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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와 천제루의 만남, 그리고 이별
1924년 황포군관학교 교장 시절의 장제스(왼쪽)와 천제루. [김명호 제공] 1927년 8월 21세의 천제루(陳潔如)는 장제스(蔣介石)가 권하는 미국 유학을 떠났다. “정권을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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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學良과 宋美齡(下)
대만 타이베이 스린(士林) 관저에서 그림을 그리는 쑹메이링과 이를 지켜보는 장제스. [김명호 제공] 쑹메이링(宋美齡)은 시안을 폭격하려는 난징 정부의 결정을 보류시키고 193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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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독립은 불가능" 하버드 출신'Mr.클린'
대만 제 1야당인 국민당은 '오래된 가게'(百年老店)로 불린다. 1894년 쑨원(孫文)이 만주족의 청(淸)을 타도하자며 세운 흥중회(興中會)가 모태다. 그런 국민당이 16일 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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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1970년대 핵무기 고폭실험
대만이 1970년대 핵무기 개발 직전 단계의 고폭(高爆:원자폭탄의 뇌관이 되는 고성능 폭약)실험까지 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포기했다고 첸푸(錢復) 전 대만 외교부장이 밝혔다. 장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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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떨어진 별 - 해외] 역사속으로 떠났다
*** 정계 냉전 종식 이끌어낸 레이건 전 대통령 세계사에 굵직한 획을 그은 정치 지도자들이 잇따라 유명을 달리했다. 11월엔 40여년간 가장 주목받는 아랍 지도자로 꼽혀온 야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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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징궈 전 대만 총통 부인 별세
대만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부인 장팡량(蔣方良.본명 파이나) 여사가 15일 낮 12시40분 폐암으로 타이베이 룽민(榮民)총의원에서 별세했다. 88세. 러시아 출신으로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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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싱가포르] 上. 리콴유 아들 12일 총리 취임
'작은 거인' 싱가포르가 새로 태어난다. 리콴유(李光耀) 초대 총리의 장남인 리셴룽(李顯龍.52)부총리가 12일 새 총리에 오른다. 아시아 최초의 '합법적인 부자 권력세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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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스·장징궈 부자 대만에 매장키로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전 대만 총통 부자가 대만에 묻히게 됐다고 9일 홍콩 문회보가 보도했다. 대만 국방부는 현재 타이베이(臺北) 남쪽 타오위안(桃園)현 다시(大溪)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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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재미 쑹메이링 여사 "고국에 묻어달라"
한때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장제스(蔣介石.1887~1975) 전 대만 총통의 부인 쑹메이링(宋美齡.사진)여사가 위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만 언론들은 최근 "미국에 살고 있는 宋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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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機 본토 직항, 장제스 손자가 '공신'
장제스(蔣介石)전 대만 총통의 손자가 중국~대만의 '하늘길'을 연결하는 역사적인 사업을 해냈다. 춘절(春節.설) 연휴이던 지난달 26일 귀성객을 가득 실은 대만 여객기가 사상 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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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체육 살리자] 3. 대만, 엘리트 체육은 이제 그만
"같은 중국인데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가. " 1984년 LA 올림픽 직후 당시 대만의 장징궈(蔣經國)총통은 이같이 한탄했다. 중국이 금메달을 15개나 따낸 반면 대만은 동메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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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만엔 이산아픔 없다
50여년간 헤어졌던 남북한 이산가족에게 허락된 상봉 시간은 고작 나흘뿐.그후엔 다시 헤어져야 한다. 통일이 돼 한나라 국민으로 함께 살기전이라도 자유롭게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눌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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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총통 새대만] 下.국민당은 살아있다
쑹추위(宋楚瑜)와 롄잔(連戰)-.지난 3월 총통선거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총통과 맞섰던 주역들이다. 두 사람은 끝내 20일의 취임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 외유에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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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역사]
1945년 8월 : 일본 식민통치 종식, 통치권 중국에 반환 1949년 10월 :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건국 1949년 12월 : 국민당 정부, 국.공내전 패배로 대만 이주,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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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난 리덩후이는…]
국민당 주석직에서 물러난 李총통은 대만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총통과 국민당 주석에 오른 인물. 대만의 민주화와 독자 생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세계의 관심을 끌었다. 농업경제학자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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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약사]
1945.8월 일본 식민통치 종식, 통치권 중국에 반환 1947.2월 2.28사건, 국민당 부패에 항거한 주민봉기 무력진압 1949.10월 중화인민공화국(중국)건국 19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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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서 본 '대만 정권교체']
천수이볜의 총통 당선에 대해 중국은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民進黨)의 승리라기보다 국민당의 패배라고 분석하고 있다. 50여년간 장기 집권해온 국민당의 분열과 부패가 대만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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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선택한 대만-전문가 진단]
변화와 안정이라는 선명히 대립되는 두 흐름 속에서 치러진 총통선거 결과 대만인들은 변화를 택했다. 중국의 대만백서 발표로 조성된 긴장 속에서도 양안간 무력충돌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