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418)군수보급(4)|지원작전(4)

    실탄 없는 총이 아무 쓸데없는 것처럼 군수보급이 뒤따르지 않는 작전이란 있을 수 없다. 물자의 대량 소모를 수반하게 되는 현대 국지전은 군수보급상태에 따라 전세가 좌우될 때가 많다

    중앙일보

    1973.01.26 00:00

  • (412) 네델란드군 대대-우방 참전부대(13)

    「네덜란드」군 대대는 한국전이 벌어진지 5개월만인 50년 11월 23일 부산에 도착, 예비 훈련을 받을 사이도 없이 곧 전선으로 이동하여 많은 전투를 치렀다. 「네덜란드」는 식민지

    중앙일보

    1973.01.08 00:00

  • (411)|우방 참전부대(12)|호주·「뉴질랜드」군

    육·해·공 3군을 모두 참전시킨 호주와 육·해군만 보낸 뉴질랜드는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며 한국전 3년을 치렀다. 그것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관계처럼 양국도 당시 외교·군사·경제면

    중앙일보

    1973.01.04 00:00

  • (404)|우방참전부대⑤|이디오피아 황제근위대

    「이디오피아」정부는 한국전이 일어난 다음해인 51년5월7일 황제 근위대의 일부 병력을 1개 대대로 편성, 한국에 파병했다. 한국참전 16개국 중 정예를 자랑하는 황제 근위대를 참전

    중앙일보

    1972.12.11 00:00

  • (403)우방 참전부대(4)

    태국정부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즉시 파병을 결정, 「아시아」우방으로서는 첫번째로, 「유엔」회원국으로서는 네번째로 빨리 한국에 출병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회원국

    중앙일보

    1972.12.08 00:00

  • (398)피 어린 산과 언덕(22)

    51년1월 중공군의 개입으로 아군의 방어선이 평택동북방으로부터 원주까지 일단 후퇴했다가 총 반격전으로 전선을 차차 북상시키고 있을 무렵 공산군은 2개 사단규모의 병력을 후방에 투입

    중앙일보

    1972.11.25 00:00

  • (395)피어린 산과 언덕(19)

    (1) 51년 하반부터 적의 진지 요한화와 휴전회담 진행을 위한 「유엔」군의 정치적 배려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된 고지쟁탈전은 53년 중공군의 7월 대공세로 그 막을 내리고 3년 동안

    중앙일보

    1972.11.18 00:00

  • (388)피 어린 산과 언덕(12)|저격병 능선전투(1)

    저격병 능선은 철의 삼각지대 내 공산군의 주요 깃점인 오성산에서 한국군 제2사단의 주 저항선에 접근할 수 있은 지점일 뿐 아니라 아군이 이를 제압하면 이 일대의 적이 큰 위협을 받

    중앙일보

    1972.10.30 00:00

  • (387)피어린 산과 언덕(11)|백마고지 전투(2)|고지 쟁탈전

    철의 삼각지대 전투는 52년 1백50「마일」의 한국전선에서 벌어진 고지쟁탈전 중 가장 치열한 싸움이었는데 이 중에서도 백마고지 전투는 그 압권이라고 할 만하다. 1951년 11월2

    중앙일보

    1972.10.26 00:00

  • (385)-(9)

    고지 쟁탈전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 Linne)은 이름 그대로 미군이 한국전쟁의 고지 쟁탈전 때 겪은 악전 고투의 대명사였다. 다음은 미제25사단과 미제2

    중앙일보

    1972.10.20 00:00

  • (372)|스탈린의 죽음 (6)|소련과 6·25 (3)

    「스탈린」은 처음에는 북한 공산군에 장비만 제공해줌으로써 6·25를 통해 한반도 전체의 적화를 기도했다. 소련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소망이기도 한 이런 계획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중앙일보

    1972.09.16 00:00

  • (371)|「스탈린」의 죽음 (5)|소련과 6·25( 2)

    1949년 3월 초순에 「크렘린」 당국자들은 북한과 중공 집권자들을 「모스크바」로 불러들였다. 이때 중공은 만주를 거의 휩쓸며 대륙 지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으며, 남한에는 대한민국

    중앙일보

    1972.09.13 00:00

  • (351)유격전(20)|민간유격대

    6.25전쟁 중 적지가 된 여러 지방에서는 애향심과 적개심에 불타는 지방유지들과 청년들이 공산군이나 그 기관을 기습하는 등 산발적인「게릴라」전을 벌였다. 이들은「유엔」군과 경찰이

    중앙일보

    1972.07.17 00:00

  • (342)유격전(11)

    (2) 중공군 개입으로 유엔군이 임진강선까지 후퇴하자 그동안 구월산에 잠입, 준동하던 괴뢰군 1개 연대 병력은 장련·은율·안악·신천·송화·장연 등지를 차례로 기습해 왔다. 이 지역

    중앙일보

    1972.06.27 00:00

  • 국민 총화로 자립 추구|5·16 열 한돌

    5·16 군사 혁명 11주년을 맞았다. 이 기간은 자립의 추구로 요약 될 수 있을 것 같다. 냉전의 시대가 해수으로 옮아가는 국제 정세의 변화에 대처하는 벅찬 시련에 부대끼면서 자

    중앙일보

    1972.05.16 00:00

  • (324)|하늘의 전쟁(15)|제한된 임무 수행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을 패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미 극동공군은 한국전쟁에서도 『제한된 사명』을 훌륭히 완수하였다. 1944년 6월 15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창설된 미 극동

    중앙일보

    1972.05.10 00:00

  • (438)제26화 경무대 사계(65)

    2대 대통령의 취임식은 8월15일 상오 10시 서울의 중앙청 광장에서 열렸다. 정부는 환도하지 못했더라도 부산에서 이 뜻 있는 기념식을 할 수야 없지 않느냐는 대통령의 고집 때문

    중앙일보

    1972.04.20 00:00

  • 맹호, 「안케」고지 탈환

    본사 「사이공」주재 신상갑 특파원은 18일 월맹군에 대한 일대 반격전을 벌이고 있는 맹호사단 작전현황을 보도하기 위해 「안케」협곡에 종군, 취재했다. 다음은 신 특파원의 제1신.

    중앙일보

    1972.04.19 00:00

  • 맹호 「안케」서 혈전전개

    【사이공=신상갑특파원】주월한국군은 17일 월남참전사상 최대의 혈전을 「안케」에서 벌였다고 주월한국군 사령부가 발표했다. 월남중부고원의 험준한 자연요새 「안케」를 잇는 19번 공로를

    중앙일보

    1972.04.18 00:00

  • (428)경무대 사계|황규면(필자는 윤석오)

    배설물을 거름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결심은 단호했다. 그렇지만 몇 천년 내려온 습관이 하루아침에 대통령 지시가 떨어졌다고 해서 없어지지는 않았다. 대통령은 상당

    중앙일보

    1972.04.08 00:00

  • 민족의 증언 목차|4월3일로 총 310회 연재

    ▲가장 길었던 3일(37회) ①=전선과 경무대표정 ②=토요일의 심야 파티 ③=육본의 대책 ④=심야의 비상각의 ⑤∼⑦=국회의 수도사수결의 ⑧=정훈국과 KBS ⑨=대통령의 전화방송 ⑩

    중앙일보

    1972.04.03 00:00

  • (285)|적의 춘계 공세 (14)|화력의 결정타 (1)

    적의 춘계 공세 때 그들의 인해 전술을 분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미군의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한 마디로 인해와 화력의 대결에서 후자 편에 군 배가 올랐다고 하겠다. 19

    중앙일보

    1972.02.02 00:00

  • (282)적의 춘계공세(11)

    (8) 우리 나라의 참 모습을 널리 해외에 알리는데 있어 백명의 대사보다 더 많은 몫을 했다는「리를·에인절즈」는 기실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현리전투에서 탄생했다. 전쟁에서 몇

    중앙일보

    1972.01.26 00:00

  • (279)|적의 춘계 공세(8)|국군의 고전과 반격(5)|3군단, 현리서 고배

    적의 춘계 공세 때 가장 고전한 부대가 한국군 제3군단 소속의 제9사단과 제3사단이었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전선에 투입된 한국군9개 사단 중 5개 사단은 미 군단에 배속됐지

    중앙일보

    1972.01.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