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30. 서울대 국악과 초창기
1962년 서울대 국악과 학생들이 합주하는 모습. 어려서 부터 국악기를 전공한 학생이 입학하기 시작한 해였다. 1959년 3월 새로 생긴 서울대 국악과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한 학생들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9.현제명의 제의
필자는 대학 졸업 직전 학교 축제가 열린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광장에서 가야금을 연주했다. 서울대 법과대학 졸업반 마지막 학기가 끝날 무렵이었다. 1958년 법대가 있던 서울 동숭동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8. 휘발유 먹는 사나이
원영재의 거문고 연주에 필자가 장구 반주를 하던 모습. 처음에는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휘발유를 마신다니까요.” 1960년대 후반 어느 날 우리 집에 취재하러 왔던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7. KBS 콩쿠르 1위
1957년 KBS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 1등 상을 받은 필자(앞줄 왼쪽)가 스승 김윤덕 선생과 나란히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1957년 KBS는 사옥을 서울 정동에서 남산으로 옮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6. 심상건의 산조
심상건 선생이 1926년 발표한 가야금 병창 음반. [사진=김문성씨 제공] 심상건(1889~1965) 선생은 가수 심수봉의 아버지와 사촌 간이다. 국악인들은 “심수봉이 물려받은 음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4. 졸업식 불참
가야금 산조의 명인 김죽파 선생. 내가 고등학생 때 처음 나갔던 콩쿠르에서 나를 지켜봤던 분이다. “그때 황 선생 손이 너무나 아름다웠지. 그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해.” 1970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3. 심상건, 스트라빈스키
필자의 가야금 스승인 심상건 선생은 해학과 창조정신을 함께 전수해줬다. 천상 스트라빈스키였다. 심상건 선생은 키가 작은 편이지만 체구는 아주 탄탄해 보였다. 머리는 크고 목은 짧았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2. 단 한번의 가르침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은 우연히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가야금을 배우던 부산 국립국악원에는 아주 나이가 많은 원로 악사가 한 분이 있었다. 이름은 김영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1. 명인들과의 교류
필자에게 큰 영향을 준 명창 김소희 선생이 집에서 콩나물을 다듬고 있는모습. [사진=김문성씨 제공] “김 소위라고요? 이번에는 군인을 소개시켜주시는 건가 봐요?” 스승 김윤덕 선생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8. 스승 김윤덕
1960년대 후반 김윤덕 선생이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김윤덕 선생의 방문에는 항상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부산에서 방 한 칸을 얻어 혼자 살고 있었던 김 선생은 산조를 배우겠다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7. 스승 김윤덕
실패들이 일렬로 단단히 고정돼 있어 잡음이 나지 않는 필자의 가야금(사진). 이 방법을 창안한 분은 김윤덕 선생이다. “서양 음악이란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저 사람들은 시
-
[도올고함(孤喊)] 코토 대가의 100년 전 고백 "조선 리듬은 파격이다"
가야금산조는 1890년대 영암의 김창조(金昌祖)의 창안으로 시작된, 세계적으로 유례를 보기 힘든 1시간 전후의 순수기악곡이다. 한국산조학회는 산조를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5. 구전심수
1957년 국립국악원에서 연주하고 있는 스승 김윤덕 선생. 김윤덕 선생은 1968년 최초의 가야금 산조 기능 보유자로 지정된 분이다. 나는 이 분에게 52년부터 6년 간 산조를 배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4. 허튼 가락, 산조
국립국악원 악사들과 합주하고 있는 심상선 선생(에서 둘째). 심 선생의 산조 연주는 필자의 음악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가야금이 본래 저런 것이었던가?’ 나는 정말 놀라서 뒤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1. 대학입시
1953년 환도 직후 서울 계동 필자의 집에서 정대권 아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 파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1954년 겨울 서울대 법대 입학시험을 보러 온 학생들이 시작종이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10. 법금과의 만남
필자의 첫 정악 스승인 김영윤(앞줄 맨 왼쪽) 선생님이 가야금을 합주하고 있다.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산조 가야금과 달리 궁중음악인 정악을 타는 가야금은 법금(法琴), 혹은 풍류 가야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9. 반대와 천시
1953년 부산 천막교실에서 공부하던 경기고 2학년 3반 때 필자(맨 뒷줄의 맨 왼쪽). “가야금을 배우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너는 지금 학생이니 대학이라도 나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5. 가야금과의 첫 만남
필자에게 가야금을 소개했던 친구 홍성화가 1958년 또 다른 친구 이희우와 함께 백령도로 가는 군함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경기중학교에서 걸핏하면 선생님들과 논쟁을 벌여 문제를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4. 말대꾸 하는 학생
경기중학교 입학 직후의 필자.경기중학교 선생님들은 나를 골칫거리로 생각했다. 한 번은 물리 선생님이 숙제를 내줬다. 뜨거운 물에 빈 병을 거꾸로 넣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3. 학교 대표 독창자
1945년 재동국민학교에 다닐 때의 필자 사진. 현재 현대그룹 사옥 자리인 서울 계동의 집에서 찍었다.내가 재동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1940년대엔 KBS가 서울 광화
-
[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2. 낙제생
공부라는것을 가르쳐준 외당숙 김소열 아저씨와 경기중 1학년 때(1949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어린 시절에 나는 쓴약을 먹는 것보다 공부하기가 더 싫었다. 맨땅이었던 당시 서울
-
[도올고함(孤喊)] 이미자 노래인생 48년 "예술은 희로애락에 정직한 하늘의 성의"
9월 18일 비 내리는 오후 나는 장충동에서 이미자와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국 가요사에 대한 확고한 의식을 가지고 월북가수들의 옛 노래를 모아 ‘해금가요’판
-
일렉트릭 가야금 … 전자 비올라… "전통 악기는 성에 차지 않아요"
전통 악기 그대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이들이 있다. 고색창연한 국악기에 전자기타용 부품을 달아보기도 하고, 전자 비올라를 찾아 일본 도쿄를 샅샅이 훑기도 했다. 네 명의 가야금
-
시민이 키운 '마산 문화강좌 30돌'
합포구문화동인회 주최로 지난 23일 마산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제349회 민족문화강좌가 끝난 뒤 조민규 회장(앞줄 오른쪽 둘째)과 강사로 초청된 이영조 박사(앞줄 오른쪽 셋째)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