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윤선도 함경도로 쫓겨 가

    □‥‥MBC-TV 『조선왕조5백년-회천문』 (18일 밤9시45분)=윤선도의 상소를 읽은 광해군은 그가 자신을 멸시하고 이이첨을 비난했다며 함경도 경원으로 부처시킨다. 또 허균은 이

    중앙일보

    1986.08.18 00:00

  • (151) 거제 반씨

    반씨는 고려 충렬왕때 문하시중(국무총리격)을 지낸 문절공 반부의 후손들이다. 기성(경남거제의 옛이름)을 비롯, 충주·남평·청도·홍천, 예천·음성·전주·광주등 여러 갈래로 분파됐으나

    중앙일보

    1985.11.02 00:00

  • (147)-덕산이씨

    덕산이씨의 시조는 이존술-. 고려명종때 덕풍호장 (현충남예산군덕산면)을 지낸 연유로 덕산을 본으로 가문을 열었다. 그의 아들 언후는 야인정벌에 공을세워 검교대장군의 벼슬에올랐고 손

    중앙일보

    1985.08.17 00:00

  • (143)진주 소씨

    진주소씨의 족보는 시조를 후진한주 소백손공으로 전한다. 그의 5대손이 신라6부 촌장 중 한사람인 돌산고허촌장 소벌공. 그는 양산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알을 찾아낸 신라건국의 아버지

    중앙일보

    1985.06.08 00:00

  • (137)선산 김씨/글-이용우기자 사진-채흥모기자

    선산김씨의 시조는 김선궁. 대보공 김알지의 30세손, 문성왕의 8세손으로 고려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통일에 공을 세우고 개국벽상공신 영문하시중 삼중대광에 올랐다고 전한다. 그의 아

    중앙일보

    1985.04.27 00:00

  • 성씨의 고향사천 목씨

    목씨는 전국에 2천여가구 1만여명, 성별인구순위 1백13번째 희성이다. 사천단일본. 고려조에 낭장·동정을 지낸 목효기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 선대가 사천에 살며 형제간의 우애가 남

    중앙일보

    1985.04.20 00:00

  • 『이세보시조집』내놔|단국대 진동혁교수

    진동혁교수 (단국대·국문학)가 『주석 이세보시조집』을 냈다. 이세보는 조선후기(l832∼1895년)시조작가-. 공조·형조판서를 역임한 문장가다. 정음사가 펴낸 이시조집에는 이세보가

    중앙일보

    1985.04.06 00:00

  • (134)함평 이씨/글-김창욱기자 사진-장충종기자

    함평이씨는 고려때 신호위대장군 (종3품)을 지낸 이언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그러나『고려사』에 그에 대한 기록은 없다. 기록이 확실한 인물은 충숙왕때 삼사사를 지낸 이광봉으로 그가

    중앙일보

    1985.04.06 00:00

  • 성씨의 고향순천박씨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던 1456년. 단종복위를 도모했던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유성원, 이개, 하위지등 사륙신은 거사직전에 탄로나 세조앞에서 국문을 받았다. 이때

    중앙일보

    1985.03.30 00:00

  • (132)연안 김씨

    연안 김씨는 조선조 성종∼인조대의 손꼽히는 명문이었다. 연산조의 무오·갑자사화, 중종반정과 기묘사화, 임진·정유왜란, 광해의 폭정과 인조반정 등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에 중앙정계에 진

    중앙일보

    1985.03.16 00:00

  • 상산 김씨

    고려 공민왕 8년 4만의 홍건적이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했다. 당시 1세기에 걸친 원나라의 내정간섭에 시달려왔던 고려는 이후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망국의 위기에 놓

    중앙일보

    1985.03.02 00:00

  • (128) 함양박씨

    함양박씨의 시조는 신라 경명왕의 세째 아들인 박언신 (속함대군)이다. 그러나 그이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중엽 예부상서를 지낸 박선(1세)을 중시조로 삼고 세계를 잇고있다. 속함은

    중앙일보

    1984.12.15 00:00

  • (127)고흥유씨|항일의병대장 유인석·유중화, 유관순등 독립사에 의로운 자취남겨

    고흥유씨는 한국독립운동사에 의로운 자취를 남겼다. 굴욕적인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었던 1875년대, 의병대장으로 피의 항쟁을 벌였던 유인석과 유중화, 3·1독립만세 사건에서 빛나던

    중앙일보

    1984.12.08 00:00

  • (124) 보성선씨

    보성선씨는 뒤늦은 성씨답지않게 5천여가구에 인구 2만여명으로 국내 성씨별 인구순위 73위의 귀성이다. 시조는 중국 노나라 대부 환백의 후손인 맹윤지. 1382년(고려우왕8년) 명나

    중앙일보

    1984.11.10 00:00

  • 순박한 배추장사의 소원에…

    □…KBS 제2TV『전설의 고향』(14일 밤7시50분)=「안암교」. 동대문밖 해장국집이 그 독특한 맛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하루는 형조판서가 평복차림으로 들어와 해장술 석잔과 선지

    중앙일보

    1984.10.13 00:00

  • 성씨의 고향|용인 이씨

    용인이씨의 시조는 고려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삼한벽상공신삼대광=정l품) 이길권-. 신라말 경기도 용인지방의 토호였던 그는 왕건을 도와 삼한을 통합하는데 공을 세웠다. 훗날 산성(현

    중앙일보

    1984.07.20 00:00

  • (111)여주 이씨

    여주 이씨는 3파가 있다. 서로 시조를 달리하면서도 오랜 예전부터 서로 동족으로 알아 사이 좋게 지내온다. 남한에만 1만5천여 가구 7만5천여명을 헤아리는데 그중 절반가량은 이인덕

    중앙일보

    1984.06.02 00:00

  • (105)덕수 장씨

    덕수장씨는 우리나라 2백여 성씨중 특이하게 아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시조는 고려 충렬왕때 고려에 귀화한 장순룡. 서기1274년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원세조 쿠빌라이의 딸)를 따라

    중앙일보

    1984.04.14 00:00

  • 시조는 고려때 오령

    동복군 오현좌의 큰아들 영도아버지에 이어 고종으로부터 동복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동복으로 하여 세계(세계)를 이어오고 있고 둘째 아들 숙귀는 군위오씨로 분적했다고 한다. 영의

    중앙일보

    1984.03.31 00:00

  • 성씨의 고향예안(선성)김씨

    예안김씨의 시조는 고말충렬왕 연간 선성현으로 불린 예안의 호장을 지낸 상. 대부분의 김씨들이 신라 왕족에 그 근원을 두고있고 경주김씨의 족보에 『김상이 선성을 본관으로 했다』는 기

    중앙일보

    1984.03.03 00:00

  • (5)기미∼경자년 교난

    수렴청정으로 왕권을 대행하던 김대왕대비는 1839년 12월10일 「옥중천주교인의 조속한 처결」을 명령했다. 이같은 명령이 내려지는데는 조만영을 정점으로한 담양 조씨 세도의 압력과

    중앙일보

    1984.02.09 00:00

  • (95)강릉 양근 함씨

    함씨는 강릉·양근의 두 본관이 있다. 옛 문헌에는 64본의 함씨가 전하나 이는 세거지의 표시로 본다. 시조는 함혁. 그의 계통을 놓고 중국(당)에서 건너왔다는 동래설과 마한의 부족

    중앙일보

    1984.01.28 00:00

  • (94) 광주이씨

    광주이씨는 조선조에서 상신(영·좌·우의정) 5명, 대재학 2명, 청백리 5명, 공신 11명을 낸 명문이다. 세종이후 5조에 걸쳐 「출장입상」했던 명신 이극배(영의정), 폭군 연산의

    중앙일보

    1984.01.21 00:00

  • (2) 기해교란 순교자들

    조정의 기해교란 천주교 박해를 당당히 공박한 「상재상서」. 한국친주교인 51명과 프랑스 사제 3명이 헌수·옥사의 순교를 한 기해교난(l839년). 이들 순교자들은 1925년 모두

    중앙일보

    1984.01.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