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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한 군원 삭감
미국의「레어드」국방장관과 「무어러」합참의장은 15일 미국의 73회계년도 대외 군원 안에 대한 미 하원외교위원회에서의 증언을 통해 미 의회가 오는 6월말로 끝나는 72회계년도 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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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휴전회담의 개막 (17)|군사분계선 논쟁(5)
1951년 10월25일 판문점에서 재개된 휴전회담은 의제 제2항인 「군사분계선」설정문제를 다시 토의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8월16일에 「조이」제독 제의에 따라 쌍방분과위원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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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휴전회담의 개막(9)|한국의 입장(4)
휴전회담개최와 함께 국군수뇌들이 처한 난처한 입장과 고민을 관계 지휘관들로부터 더 들어보겠다. 이 증언에서 이때까지 묻혀있던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고 아울러 작금의 사태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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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국방 월남방문
유재흥 국방부장관은 8일 상오8시50분 주월 한국군을 초도순시 하기 위해 합참본부장 박원근 중장 및 의전담당관과 함께 KAL기 편으로 김포공항을 출발했다. 유 장관은 4일간 월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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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13)「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전쟁 3년
(10) 한국군제1군단의 제11사단은 동해안과동부산악지대에서 적과 대전하였다. 원래 이 사단은 지리산에서 공비토벌작전을 전개하다가 적의 춘계공세가 개시되기 전에 제1군단에 소속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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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거 창 사건(12)|후유증
거창 사건은 군 재 결심과 함께 공식적으로는 일단 마무리됐지만 현지에서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정부는 주민처형의 책임을 물어 군 관련자를 처벌했지만 거창군 신원 면에 묻힌 「시한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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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우방 지원 계속 요청
【사이공 15일=신상갑 특파원】15일 「사이공」에서 열린 월남 참전 6개국 대사 회의는 월남 정세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고 끝났다. 유양수 한국 대사는 이날 기조 연설을 통해 월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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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7)
(2) 1951년 3월 24일에「맥아더」성명이 발표되고 이어 4월 5일에「조세프 마틴」의정이 하원에서 원수 서신내용을 낭독한 그 이튿날인 4월 6일에「트루먼」대통령은「애치슨」국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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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맥아더」원수 해임(6)
(1) 1951년 3월 중순에 「트루먼」대통령은 한국전쟁을 종결짓기 위한 중대결정을 내렸다. 물론 이것은 「맥아더」가 주장한 것 같은 「완승」이 아니라 「유엔」동맹국의 의향에 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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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6)|「「맥아더」원수 해임(5)
유럽」제일주의(2) 「트루먼」대통령이 11월30일에 행한 『원자탄성명』의 불발로 「맥아더」의 확전안 실현은 영 가망 없게 됐지만 그래도 노병은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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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맥아더 원수 해임(4)|유럽제일주의(1)|6.25 21주 3천여 증인 회견. 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
미국외교정책의 기본은 원래가 『유럽제일주의』이지만 아시아에서 한국전쟁을 치르면서도 워싱턴의 그런 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트루먼과 맥아더와의 대립도 근원은 워싱턴의 유럽제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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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무원칙 매각
국회 각 상임위별 국정 감사 반은 2일 지방관서에 대한 본격적인 감사에 들어갔다. 외무위를 제의한 11개 상위의 감사 반은 10일께까지 지방감사를 끝내고 중순께부터 중앙관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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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중진회담
여야는 1일 국회의장 실에서 두번째 중진회담을 열어 유재흥 국방장관으로부터 남북한의 전력비교, 북괴의 전쟁 도발계획 등에 관한 보고를 들었다. 유 국방장관은『중공의 「유엔」가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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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제19화 형정 반세기(6)|권녕준
3·1 독립 만세사건의 대표자 33인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은 그날 하오 5시쯤이었다. 30여명의 사복형사가 이들을 연행한다고 33대의 인력거를 끌고 왔으나 실제로 태화관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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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3년|중공군 개입⑥-맥아더의 오산(상)
인천 상륙작전 성공으로 절정에 이르렀던 「맥아더」원수의 명성은 중공군 개입과 그후의 이른바 「12월 총퇴각」으로 급격히 하락했다. 특히 개입여부에 대해서 애초부터 「부」라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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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한·미 안보회의 개막
「멜빈·R·레어드」미국방장관을 맞아 열리는 제1차 한미안보협의회가 12일 하오 2시부터 국방부 회의실에서 막을 올렸다. 12, 13일 이틀동안 계속될 한미안보회담에는 한국측에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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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8선 돌파와 북진 (14)|미 10군단의 국경 진격|「6·25」21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한국 전쟁 3년
미 제1 해병 사단과 미 제7 보병 사단을 기간으로 한미 제10군단 사령부는 10월26일 이미 한국군 제1군단이 육로로 점령한 원산에 상륙했다. 이보다 3일 후인 29일에 10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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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군 가속 촉구
【로스앤젤레스 2일 AP동화】미 국방성은 「닉슨」대통령에게 현행 계획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월미군의 철수를 촉구하고 있다고 2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가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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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의 비록 미 월남 개입사-NYT지 보도 내용
편집자 주=다음은 게재여부를 둘러싸고 법정투쟁으로 번지기 전까지 「뉴오크·타임스」 지가 연재한 미국의 월남전 개입경위를 다룬 미국무성 비록의 64, 65년 부분 중 오점을 발췌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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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8선 돌파와 북진(1)|월경 논쟁(상)|6·25 20주…3천 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유엔군은 9월말까지 38선 이남에서 대체로 북괴군을 일소하였다. 10만 침략군은 3개월만에 궤멸되어 불과 2만여 명의 패잔병력만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후퇴했다. 이제 문제는 유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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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월 국군 우선 1개 사 철수
정부는 주월 한국군의 단계적 감축에 관한 전반적인 계획을 매듭짓고 현재 미국·월남 정부와 주월 한국군의 감축시기와 규모 등 구체적인 「스케줄」을 협의하고 있다. 최규하 외무장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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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워싱턴과의 논쟁 (2)|인천 상륙(4)|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회의실의 분위기는 「맥아더」원수와 그의 몇 참모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인천 상륙에 반대였다. 누가 보아도 중과 부적으로 「맥」원수의 집념인 인천 상륙 안은 햇빛을 보지 못할 것 같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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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워싱턴과의 논쟁 (1)|인천 상륙 (3)|6·25 20주…3천여의 증인회견·내외 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해리·S·트루먼」미 행정부가 북괴의 남침 후 한국 문제에 관한 정책을 우선 결정하고 그 후에 「유엔」의 추인을 받은 것과 비슷한 경우가 실제 전쟁 지휘에 있어서 현지 군사령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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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도 북진 계획
【뉴요크7일AP동화=본사특약】미국의 합참 장성들은 약 3년 전부터 이미 「라오스」와 「캄보디아」내 공산군의 성역을 점령하고 북진함으로써 월남전을 종식시키려는 비밀계획을 마련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