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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로 기술 못 배우면 귀국 말라" … 만세 삼창 과학자 44인
늦은 밤에도 연구를 위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모습. 총 1401개 기관이 입주해 있다. 이들은 지난 40년간 한국의 과학기술과 경제 발전을 선도해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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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현장] 음지서 애쓴 원전 과학자들에게 갈채를
아랍에미리트(UAE)에서 날아온 한국형 원전 첫 수출 낭보는 한국 경제에 큰 활기를 불어넣을 일대 사건이다. 규모가 400억 달러(약 47조원)로 단일 수출 건으로도 사상 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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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토늄 추출 파문] 정부 '어물쩍' 해명이 의혹 부풀려
▶ 1980년대 초 플루토늄 실험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TRIGA)’. [연합]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실험했다는 플루토늄 추출이나 우라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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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아, 마패정보, 굿모닝TV CEO로 변신
군 시절부터 IT분야에 눈떠 공군사관학교(http://www.afa.ac.kr)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빨간 마후라’다.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 하늘의 사나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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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72)
(72) 결론 뻔한 회의 내가 "원자로 계통(系統)설계는 우리 에너지연구소(한국원자력연구소 전신)가 하겠다" 고 말하자 회의장은 돌연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제까지 회의는 한국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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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71)
(71) 학자와 사업가 성낙정(成樂正.73.한국전력전우회 회장)한국중공업 사장은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와 한국중공업 등이 턱없는 인력난에도 불구하고 왜 원자로 계통(系統)설계를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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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67)
(67) 미운정 고운정 앨런 세섬 미 국무부 핵(核)감시국장은 나와 토론을 벌이면서 왜 한국이 원자력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이룩하려고 애쓰는지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불과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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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53)
53. 약소국의 비애 나는 미 국무부 핵(核)감시국장인 앨런 세섬 박사를 마중하기 위해 도착 시간에 맞춰 유성 고속버스터미널로 나갔다. 잠시후 그가 터미널에 나타났다. 그는 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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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52)
캐나다 화이트셸연구소의 핵연료주기 개발담당 부소장인 윌리엄 행콕스 박사는 매우 우호적이었다. 내가 '연계(탠덤.tandem)핵연료주기' 기술을 공동 개발하자고 제안하자 그는 흔쾌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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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45)
45. 누이좋고 매부좋고 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연구비를 타 낼 명분을 찾느라 대덕(大德)공학센터 간부들과 협의를 거듭했다. 그 결과 '대전차관통자' (對戰車貫通子)를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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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40)
40. 원자력과의 인연 윤자중(尹子重.71.전 교통부장관)공군참모총장은 나의 갑작스런 방문에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尹총장에게 찾아온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총장님,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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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36) 뒤바뀐 입장 미국의 무기 제조회사인 휴즈 에어크래프트社는 우리가 레이저 탱크사격 통제 장치를 독자 개발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모양이었다. 우리가 이미 개발을 끝낸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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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33)
(33) 다시 돌아온 '친정' 1978년 7월 나는 다시 국방과학연구소(ADD) 레이저.야시(夜視)장비 부장을 맡았다. 1년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사이 레이저실은 레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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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31)
(31) 잘되면 부하功 나는 국방과학연구소(ADD)에 파견대장으로 나와 있는 주한 미 군사고문단의 지안콜라 중령과 매클로이 상사, 그리고 풍산금속 공장장으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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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7)
(27) 원점서 다시 시작 나는 김성진(金聖鎭.69.전 과기처장관.육사11기)국방과학연구소(ADD) 부소장에게 "한가지 조건이 있다" 고 말했다. 金부소장은 내가 조건부로 탄약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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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5) 깨끗한 뒤집기 김병원(金昞源.71.한국화낙 상임고문)대통령 과학기술담당 비서관은 내가 제시한 레이저 프로젝트 방안이 매우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 주장에 공감한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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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23)
(23) 과기처와의 충돌 나는 단호한 목소리로 내 의견을 분명히 밝혔다. "국방과학연구소(ADD)는 독자적으로 레이저 프로젝트 계획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직접 제출하겠습니다. 과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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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2)
(22) 청중앞의 거짓말 오네스트 신은 잠시 답변을 주저했다. 나는 그가 왜 답변을 주저하는지 그의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는 레이저를 사용해 핵융합이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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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20)
20. 청와대와 정면담판 오네스트 신은 과학자 답지 않게 정치적인 수완도 뛰어난 사람이었다. 과학계의 핵심 인맥을 통하지 않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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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19)
(19) "큰 거 놓쳤어" 심문택(沈汶澤.98년 작고)국방과학연구소(ADD)소장은 나를 불러 세우더니 '오네스트 신' 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韓박사, 하버드대 출신의 '오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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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18)
(18) 의문에 싸인 인물 76년 2월 초순 어느날,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부장인 성기수(成琦秀.65.전 동명정보대 총장)박사가 급히 내 방에 들어왔다. 가끔씩 국방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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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12)
(12) 알다모를 吳수석 나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레이저 무기와 야시(夜視)장비 개발을 주관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레이저는 무기로 활용돼야 합니다. 아무리 민간 과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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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7)
7. 한번에 'OK' 낙하산을 만드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무게 ▶공기 투과도(透過度) ▶최적속도 등 세 가지였다. 예컨대 낙하산에 매다는 물체의 무게에 따라 낙하산의 폭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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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수류탄에서 원자로까지 (5)
5. '낙하산개발' 특명 71년 3월24일 주한미군 사령부는 '미 7사단을 일주일 안으로 한국에서 철수할 계획' 이라고 발표했다. 한국 주둔 26년 4개월만의 철수였다. 국방과학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