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프레이저 망언 취소촉구 각계성명

    ◇구국선교단=대한구국선교단(총재 최태민)은 13일 성명을 발표, 「프레이저」미 하원의원의 한반도안보에 관한 발언은, 한미우호관계를 이간시키려는 북괴를 대변하는 중대망언』이라고 규탄

    중앙일보

    1976.04.13 00:00

  • 헤스 대령의 장한 일 치하

    20일 한국전 참전용사 76명을 접견, 다과를 베푼 김종필 총리는 영화「전송 가」의 주인공인 헤스 대령을 보자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고마운 일을 했다』고 치하. 김 총리는『당

    중앙일보

    1975.11.21 00:00

  • 한국, 여러분이 도와줘 많이 성장

    박정희 대통령은 2일 하오 청와대 대접견실에서「알베르·크라헤이」「벨기에」예비역중장 등 부부동반으로 한국을 방문한 6·25참전용사 62명의 예방을 받고 다과를 베풀면서 1시간20분

    중앙일보

    1975.10.04 00:00

  • "우리 당면목표는 전쟁방지"

    박정희 대통령은 25일하오 청와대 접견실에서 맏딸 근혜 양과 함께 6·25참전용사 일행 20명을 접견, 약 1시간동안 환담했다. 일행 중엔 전미 8군부사령관을 지낸 「브루스·쿨라크

    중앙일보

    1975.08.26 00:00

  • "여러분의 값진 희생은 한국발전의 밑거름"

    박정희대통령은 22일하오 청와대에서 「벤저민·윌슨」부부등 6·25참전용사 19명과 부인등 23명을 접견, 1시간동안 「칵테일」을 베풀고 환담했다. 이들을 초청한 김좌겸국제관광공사사

    중앙일보

    1975.07.23 00:00

  • 당시의 격전지 보고싶다

    6·25당시 한국전에 참전했다 「한국 재방문」계획에 따라 15일 내한한 미국·벨기에 참전용사들은 내한 2일째인 16일 서울관광을 하면서 마치 고향을 다시 찾은 감회에 젖었다. 이들

    중앙일보

    1975.06.17 00:00

  • "격전의 그 땅이라고 믿어지지 않는군요"

    『젊은 시절,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의 터전에 다시 되돌아 와보니 감회가 깊군요. 지금은 이 나라에 전쟁이 일어났었다고 믿어지지 않는군요』―. 6·25 한국동란당시 유엔참전 16

    중앙일보

    1975.06.16 00:00

  • 한국참전 50여명 관광차 15일 내한

    6·25동란 당시의 한국전 참전용사 50여명이 오는15일 한국관광차 내한한다. 한국참전용사 유치위원회(재향군인회·관광공사)가 6·25동란 25주년을 맞아 유치하는 이들 참전용사 관

    중앙일보

    1975.06.13 00:00

  • 기구타고 대서양 횡단 모험

    한국전 참전 용사이기도한 미육군 예비역대령「토머스·개지」2세 (49)는 사상 최초로 기구를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13일 하오7시29분「해리스버그」국제공항을 출

    중앙일보

    1974.02.20 00:00

  • (413)|우방 참전 부대 (14)|콜롬비아·캐나다 군

    중남미의 「콜롬비아」와 북미의 「캐나다」는 유엔 참전 16개국 중 가장 늦게 군대를 보내왔지만 약 2년 동안 한국에서 계속 싸웠다. 「캐나다」는 공군과 해군을 50년7월30일부터

    중앙일보

    1973.01.10 00:00

  • (412) 네델란드군 대대-우방 참전부대(13)

    「네덜란드」군 대대는 한국전이 벌어진지 5개월만인 50년 11월 23일 부산에 도착, 예비 훈련을 받을 사이도 없이 곧 전선으로 이동하여 많은 전투를 치렀다. 「네덜란드」는 식민지

    중앙일보

    1973.01.08 00:00

  • (411)|우방 참전부대(12)|호주·「뉴질랜드」군

    육·해·공 3군을 모두 참전시킨 호주와 육·해군만 보낸 뉴질랜드는 서로 공동보조를 취하며 한국전 3년을 치렀다. 그것은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의 관계처럼 양국도 당시 외교·군사·경제면

    중앙일보

    1973.01.04 00:00

  • (410)우방 참전부대⑪|프랑스 군 대대(2)

    한국에 참전했던「프랑스」군은 스스로 자산의 십자군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것은「프랑스」정부가 다른 참전국들처럼 현역이나 일반 지원병을 모집, 파한한 것이 아니라 퇴역 장병들 중에서

    중앙일보

    1972.12.25 00:00

  • (408)-(9)

    1개 소대로 구성된 「룩셈부르크」지원병은「벨기에」 지원병 대대 소속으로 편성, 파한 되어 한국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 행동을 함께 했다. 이것은 당시「룩셈부르크」와 「벨기에」가 외교

    중앙일보

    1972.12.20 00:00

  • (386)피 어린 산과 언덕(10)

    1952년 7월 한국을 방문한 영국 「로이드」국무상은 그의 귀국담에서 『한국전쟁의 현 전황은 전 전선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고 휴전회담을 틈타 전력을 보강한 중공군이 일대공세를 취

    중앙일보

    1972.10.23 00:00

  • 「콜롬비아」상원외교분과위장 「디에고·우리베·바르가스」

    『저의 나라의「코피」좀 사가십쇼. 그러면 우리는 한국의 전자제품과 비단을 사갈 테니까요.』 남미「콜롬비아」의 상원 외교분과위원장인「디에고·우리베·바르가스」(38) 씨는 정치문제보다

    중앙일보

    1969.11.20 00:00

  • 해병대의 9·l5 상륙작전

    오늘 15일은 한미해병대용사들에 의한 인천상륙작전기념일이다. 지난날의 한국전쟁이 먼 옛날로 후퇴함에 따라 자칫하면 망각하기 쉬운6·25의 전사, 그 중에서도 9·15 인천상륙작전은

    중앙일보

    1969.09.15 00:00

  • 미8군 부사령관「미켈리스」중장

    한국전 참전용사인 「존·H·미켈리스」미육군중장이 주한 미8군 부사령관으로 부임차 6일 내한했다. 「미켈리스」장군은 중령때인 50년에 미27연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 두격전에서 전공

    중앙일보

    1969.02.06 00:00

  • 미 두 우주인-서울의「랑데부」

    미국의 우주인 「쉬러」 대령 내외와 「보맨」 중령 내외가 26일 낮 12시30분 「보잉」707 미 공군기 편으로 김포 착, 내한했다. 「바바리·코트」 입은 「쉬러」 대령과 검정색「

    중앙일보

    1966.02.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