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169)-제자는 필자|제12화 조선은행(8)|일제징용피해 중국에 자원전출 해방되자 귀국 길 막혀 고생 막심

    중·일 전쟁 이후 해방까지(38년∼45년)는 일본의 대륙침략을 위한 중공업중심의 군수산업체제강화와 일계 자본의 카르텔형성시기였다. 37년의 중일전쟁을 계기로 그때까지의 농공병진체제

    중앙일보

    1971.06.02 00:00

  • 동남아(9)맨발의 입지.. 월남의 「따이한」들|사이공=이종호 순회특파원

    월남의「따이한」교포 수는 전부 합쳐 42가구 1백38명. 월남인 부인까지 쳐서 1백84명이 주로「사이공」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1세들은 대부분 2차 대전 때 동남아로 징용되어 갔

    중앙일보

    1971.04.20 00:00

  • 동남아 (6)|태국에 삼륜차 독점 공급…황해연 씨|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방콕=이종호 순회 특파원】

    공관이나 은행 및 상사 주재원 가족을 제외한 태국의 한국인들은 가정 구성·직업·국적 등이 다양하고 거의 다 수도인 방콕에 몰려 살면서 비교적 여유 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1943

    중앙일보

    1971.04.03 00:00

  • 현장 취재…70만 교민 성공과 실패의 발자취|본사 세 순회 특파원 제1신|동남아 빈곤 딛고 일어서는 대만 교민|대북=이종호 특파원(1)

    인구 1천4백여만이 살고 있는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만 한 면적의 대만에는 6백여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북·기강·고웅·대중·신죽 등에 흩어져 있다. 이들은 일제하

    중앙일보

    1971.03.09 00:00

  • 세계의 한국인|현장 취재|누가 어떻게 성공했으며 누구는 왜 실패했나?

    세계의 시민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1898년 상투를 틀고 갓을 쓴 몇 사람의 인삼 장수가 미국에 건너간 것을 비롯, 근대적인 의미의

    중앙일보

    1971.02.20 00:00

  • 해외 교민 70만…코리언의 맥박을 찾는 특별 기획|6대 주에 3 특파원

    세계의 시민으로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읍니다. 1898년 상투를 틀고 갓을 쓴 몇 사람의 인삼 장수가 미국에 건너간 것을 비롯, 근대적인 의미의

    중앙일보

    1971.02.13 00:00

  • 영주권 허용 진정

    【동경=조동오 특파원】「오끼나와」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한국은 물론 일본에의 왕래도 허용되지 않는 무권리 상태를 조속히 해제해 달라고 박대통령과 「사또」일본수상에게 호소했다. 이

    중앙일보

    1970.11.30 00:00

  • 세계 속의 한국

    이화여대는 26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학전」행사의 일환으로「세계 속의 한국」을 주제로 한 학술 대강연회(26·27일)를 가졌다. 이 강연회는 윤태림 박사의 주제강연에 이어 최상수

    중앙일보

    1970.10.27 00:00

  • 대일 민간 청구권 보상

    정부는 대일 민간 청구권을 보상키 위해 이번 국회회기에 대일 민간 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키로 결정했다. 30일 황종율 재무부장관은 채권보장신청을 받아보아야 보상범위를 알

    중앙일보

    1969.09.30 00:00

  • 영주권

    『옥문도 「사할린스크」에서 우는 사람들』이라는 한 재일교포의 저술은 우리의 심금을 울려준 바 있었다. 「사할린스크」는 소련의 극동에 있는 섬. 동으로는「오호츠크」해의 거친 파도가

    중앙일보

    1969.08.22 00:00

  • 「사할린」교포의 송환

    광복절을 맞으면 생각나는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그 무서운 징용·미병때문에 숨어다니던 일이며, 배급콩깨묵으로 연명하던 일, 일어를 상용하지 않는다고 벌받던 일등등 악몽과 같은 일

    중앙일보

    1969.08.16 00:00

  • 세계속의 한국인들

    해외영주교포수는 60만 재일교포를 제외하고 68년11월 현재 약4만명이 조금 넘는 정도이고 비영주자까지 합하면 6만명에 가까우나 그중에는 재외국민등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

    중앙일보

    1969.08.14 00:00

  • 해방 모르는 『해방24년』|60만 재일교포는 조국을 잊어간다

    한일정기여객선 「아리랑」호가 닻을 내린곳. 관서의 무역항 「고오베」(신호)에서 신인전철삼목선의 「히로노」(광야) 「골프」장앞 정거장. 그역 바로 앞이 「골프」장이다. 그역뒤편에 조

    중앙일보

    1969.08.14 00:00

  • 아직도 「정체」가 안밝혀진 원폭증

    아직도 「정체」가 안밝혀진 8월6일은 지금으로부터 24년전 일본광도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날이다. 그 당시 광도에 징용으로 끌려갔다가 폭탄을 맞은 한국인은 3천여명이나 된다. 한국

    중앙일보

    1969.08.05 00:00

  • 오끼나와 징용 한국인|1,700명 「육탄 학살」

    【오끼나와=조동오 특파원】2차 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일제에 의해 강제 징용된 한국인 1천7백명이 8·15 해방 직전 학살된 사건을 「오끼나와」 주둔 미군사령부에 근무하는 전

    중앙일보

    1969.04.12 00:00

  • 소외감 재일 교포|귀화해도 수모 여전

    재일 교포는 「이중의 내연관계」에 놓이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리고 또 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재일 교포가 놓인 위치로 해서 그 실태가 그렇게 대부분의 교포들이 또

    중앙일보

    1968.05.07 00:00

  • (4)

    재일교포는 일본에서 가혹할이만큼 엄격한 외국인관리를 받고 있다. 비좁은 국토에 인구밀도는 세계 제3위라는 일본이 외국인의 출입국 및 재류자격의 심사, 퇴거강제의 수속이며 등록실시

    중앙일보

    1968.04.06 00:00

  • (3)무적의 「신원상실」

    【동경=강범석특파원】여기, 자기는 일본사람이라고 법정에서 주장하고 또 그렇게 굳게 믿고 있는 「재일교포」가 있다.(이름은 덮어 A씨라고 해둔다) ○…A씨는 2차대전때 「오사까」에서

    중앙일보

    1968.03.30 00:00

  • 서울방송듣고 망향의 눈물

    【동경=강범석특파원】무국적의 한국인이 한국말을 곧 잘하는 일본여성과함께 소련땅 화태를 벗어나 일본에 닿았다. 소련말과 어설픈 한국말만알고 일본말을 모르는 딸을 데리고…. 1945년

    중앙일보

    1968.02.28 00:00

  • 김강안광 사건의 뿌리

    조용했던 온천장을 뒤흔들고 언 나흘째 중무장한 3백명의 일본경찰관과 대치하고있는 한국계 일본인「가네오까」(김강안광)는 한번도 보지 못한 고국 국민들에게 눈물어린 수기를 보내어 재일

    중앙일보

    1968.02.24 00:00

  • (1)실태를 돌아보고|홍종인

    일본에 거류하는 우리동포의 실정을살피기 위하여 작년 12월중순중「도꾜」의 우리 민단총본부를 위시하여「나고야」(명고층)「교도」(동경)「오사까」(대판)「고베」(신호)「후꾸오까(복강)「

    중앙일보

    1968.01.16 00:00

  • 그리던 아버지의 나라로

    20여년동안 얼굴조차 모르는 한국인 아버지 모습을 그리던 월남 「구엔·티·항」양이 27일 상오 내한, 그리던 아버지 품속에 안겼다. 올해 21살의 「구엔·티·항」(「사이공」대학교

    중앙일보

    1967.10.27 00:00

  • 재일 교포 영주권 신청 간소화|논란2년만의 「당연」 양해

    한·일 두 나라는 23일 하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을 두고 그 동안 논란을 거듭해온 시행상의 이견을 조정, ①영주권 허가기준을 완화하고 ②재일 교포의 이

    중앙일보

    1967.08.29 00:00

  • 30인 운영위서 심사

    국회재경위원회는 8일 하오 대일 민간 보상청구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정확한 보상자료의 수집을 위한 준비 입법으로 「대일청구권 민간보상신고에 관한 법률안」을 심의 통과시키고 「독립유공

    중앙일보

    1967.03.0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