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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소리가 콩 볶듯 해도, 꽃은 피고 또 아름다웠다”
니에얼의 고향 윈난(雲南)성 위시(玉溪)에 서 있는 니에얼 동상. 김명호 제공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장제스는 전면전을 피했다. 동북을 송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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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등록문화재가 뭔가요
병원 진단서도 문화재가 될 수 있을까요. 예,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중순 ‘제중원 의사 알렌의 진단서’를 등록문화재로 예고했습니다. 30일간의 공고 기간이 지나면 문화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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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맥 위에 다시 6000㎞의 성을 쌓은 까닭은
“일어서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 거창한 구호처럼 들리는 중국의 국가(國歌) ‘의용군 행진곡’의 시작 부분이다. 그 다음 부분은 이렇다.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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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산맥 위에 다시 6000㎞의 성을 쌓은 까닭은
“일어서라!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여!”거창한 구호처럼 들리는 중국의 국가(國歌) ‘의용군 행진곡’의 시작 부분이다. 그 다음 부분은 이렇다.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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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 철수 때 1만4000명 살린 선장 유족도 초청
제63주년 8·15 광복절 경축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인근 지역의 차량통행이 15일 오후 3시까지 제한된다. 경복궁 뜰에서 공식 행사가 열린 후 광화문 앞에서 시민과 재외동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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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내 몸매·얼굴, 이효리 저리가라였어"
2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기획사 사무실로 환한 미소의 패티 김이 들어섰다. “지금껏 본 헤어스타일 중 가장 마음에 든다”는 기자의 말에 그의미소가 더욱 환해졌다. 벽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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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인터뷰] 주중 한국대사 김하중 “중국을 사랑하자, 그만큼 우리가 얻는다”
지난해 12월 26일 베이징 동방광장에 있는 대사관저에서 오찬 후 대화를 나누는 도올과 김하중 대사. 일본·미국도 중국에 영사관을 4개밖에 열지 못했다. 그런데 한국은 6개의 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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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6·25를 잊지 말자
제54주년 6.25를 맞이해 우리는 이 전쟁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1950년 당시 국내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북한은 이 틈을 이용하여 남침했고 미국의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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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7. 동양이 본 개화기 조선-박노자 교수
개화기 조선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이유는 변화에 대응할 우리의 힘을 키우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이와 함께 조선을 발판으로 도약하려 했던 주변국의 이해관계도 계산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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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거울로 오늘을 보다] 17. 동양이 본 개화기 조선-허동현 교수
역사적으로 중국인들이 우리 나라에 대해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은, 자국에 대한 측면 공격의 우려, 즉 '후고(後顧)'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세기 전 일본이 조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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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일본교과서 압박 강공만이 능사아니다
일본 역사 교과서 왜곡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책이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 전략에 입각해 일본 정부를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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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칼럼] 한국에 무관심한 프랑스
어떻게 이산가족의 상봉을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남과 북에서 동시에 펼쳐진 감동의 드라마를 보면서 난 15년 전 프랑스 대학에서 한국 정치학과 역사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가졌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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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벽 넘는 유미리 문학 -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방문을 보고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芥川)상 수상작가인 재일동포 유미리(柳美里)씨가 지난 19~24일 한국을 방문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작품을 통해 일본의 가정과 사회를 폄하했다'며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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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규 대하소설"누가 이땅에 사람이 없다하랴"9권 출간
1895년 을미의병부터 1945년 광복의 날까지 반세기에 걸친 항일투쟁사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한 대하소설 『누가 이 땅에 사람이 없다 하랴』(전9권.신구미디어)가 출간됐다.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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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공관들 엑스포 자국PR총력전
○…87년부터 駐韓외국대사관들의 협조를 얻어 세계 각국으로부터 자국언어를 새긴 기념비를 수집,학교내에「세계 언어문자 조형물 공원」을 만들어온 建國大가 2일에는 칠레로부터 53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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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중앙일보 창간27돌…세계석학 특별기고-「오늘」에 바탕 둔 한중균형 찾을때
어린 나이에 세계의 수도 장안으로 가 문명을 날린 신라의 최치원에게 「섣달그믐날 친구에게」라는 시가 있다. 고향을 동쪽 하늘끝에 두고 온 두 사람의 신라유학생이 섣달 그믐날에『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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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6)-제85화|나의 친구 김영규(11)-이용상|느닷없는 입대 통지
가미카제(신풍)특공대에 지원하겠다는 조건부로 내가 경기도 경찰부에서 풀러난 1943년말,경성(서울)거리는 군국 일색이었다. 거리마다 「성전을 승리로 이끌자」는 현수막이 나붙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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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25」40주… 한국전의 기원과 성격 국제 학술회의
◎소,49년 3월 김일성에 “남침결재”/스탈린,미 대한입장 불투명하자 개입/중국 참전은 미의 국민당지원 저지책 6ㆍ25발발 4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의 기원과 성격을 재조명하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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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악성 정율성 씨 미망인 9월 방한 |「잊혀진 남편 일생」찾는다
덴마크와 네덜란드대사를 역임한 중국외교의 원로이며 해방 전 의열단단원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했고, 오늘날 중국국민이 존경하는 위대한 한국출신 음악가 정율성의 미망인 정설송 여사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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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악성"-정율성은 한국인
현대 중국 최고의 음악가가 해방 전 의열 단원으로 독립 운동을 했던 한국인 정율성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이 사실은 중국 중앙 군사 위원회가 지난 7월25일 그가 21세 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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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헌 재일 거류민단장
지난3월에 재일거류민단장으로 선출된 박병헌씨(58)가 취임인사차 7일 모국을 방문했다. 67만 재일교포들의 톱 자리에 올라선 박단장은 교포1세의 바통을 받아 2세에 넘겨주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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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본사 LA지사 송치선기자 중공입국취재
본사는 지난해말 로스앤젤레스지사 송치선취재부장을 중공으로 특파해 중공에 살고있는 우리교포들의 사는 모습을 취재토록 했다. 한·중공 이산가족의 재회를 허용할 방침이라는중공수상 조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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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국내진정작전|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l940년대로 들어서면서 항일운동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몇몇 독립단체는 항쟁을 계속했고 종전무렵엔 군사진공작전을 시도했다. 군사력에 의한 국내진공은 일본의 패전이 뚜렷해진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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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36년의열단(5)발굴 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 통치의 뒷 무대
일본에 대한 무력 항쟁에서 의열단의 활동은 단연 으뜸이다. 그들은 최후까지 항쟁했고 자랑스럽게 광복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들은 지사였을 뿐 새나라 건설에 적응하지 못했다. 약산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