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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 쪽지] 한인 美이민 100년 기념전 外
*** 한인 美이민 100년 기념전 2003년은 한국인이 이민선 '게릭호'를 타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해 미국 대륙에 첫 발을 디딘 지 1백년이 되는 해. 이를 축하하는 기념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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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이민사박물관 2005년까지 조성
인천 이민사박물관이 2005년 말 월미공원내에 조성된다. 인천시는 하와이 이민 1백주년을 맞아 최초의 이민선 출항을 기념해 이민과 관련된 각종 자료를 수집.전시하는 박물관을 건립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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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미주 이민 100주년] 9. 최악의 중미 이민
1905년 5월, 한인 1천33명을 태운 이민선이 멕시코 최남단 살리나 크루스 항구에 도착했다. 2년 전 하와이로 갔던 최초의 한인 이민 1백2명의 열배나 되는 규모였다. 이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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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스페셜] KBS '미주이민 1백년'
지금부터 1백년전인 1903년 1월 13일.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이민선 갤릭호가 닻을 내렸다. 상투와 흰 저고리 차림의 조선인 최초의 공식 이민자들은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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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엔 돈 널려…" 소문 듣고 이민 행렬
"포와(布.하와이)에 가면 빗자루로 땅을 쓸어도 돈이 나온다더라." 초창기 하와이 이민은 가난과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로 여겨졌다. 1902년 고종 황제는 하와이로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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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미주 이민 100주년] 2. 하와이 초기 이민의 애환
남국의 관광지 하와이의 햇살은 유리처럼 맑다. 청명한 하늘에서 깨끗한 공기를 타고 뻗어 내려온 햇살은 하와이 주민들에게는 사철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자연의 축복이기도 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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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퍼레이드서 韓人 이민 1백주년 홍보 행사 준비차 방한한 정용봉 회장
"내년은 한국인의 미국 이민 역사가 시작된 지 1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탕수수밭 노동자로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딘 당시에 비한다면 교민사회는 엄청나게 성장했죠. 하지만 미국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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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증언 청취 자료 수집에 온힘|하와이 90년(상)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집단 이민한 한인들의 후손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하와이 교민 사회는 올해를 남다른 감회로 보내고 있었다. 올해가 그들의 선조가 하와이에 집단이민을 시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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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출신 제이슨 리 마피아 보스 악명
알 카포네가 마피아를 장악하고 있던 1940년대, 할리우드·시카고를 무대로 한 마피아의중간 보스로 악명을 떨치면서 암흑가에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겼던 재미교포 제이슨 리의 비상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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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국제 결혼…하와이에 온 여인들의 애환
『남편따라 코쟁이 나라에 건너오니 당당하기 이를데 없어요. 서울에서 배웠던 서투른 영어로 막상 이곳에서 생활하려니 말하기는커녕 재대로 알아듣지도 못해요. 이태원골목의 떡볶기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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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와이 첫 이민으로부터 82년
구한말 l902년 12윌22일, 97명의 부두 노동자를 태운 첫 이민선이 하와이를 향해 눈발 흩날리는 인천항구를 떠난지 80여성상- 이들 이민1세들이 사탕수수밭에 뿌린 피와 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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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국인촌
『말로만 들어 본 조국 한국땅을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죽은 후에나 갈수 있을는지요』 자신의 뿌리가 한국임을 알면서도 조국땅을 한번도 보지 못한 쿠바의 한국인 2세추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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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교민들의 독립투쟁사
□…KBS제2TV 『특별기획』(1일저녁 7시)=「하와이의 혼-우리는 대한민족이요」. 미주지역을 독립운동거점으로 두었던 하와이교민들은 빼앗긴 조국과 함께 앓고, 신음하고, 기뻐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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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항일의 해외기지(3) 발굴자료와 새 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미주지역은 독립운동의 기지로서 단합된 출발을 했다. 국권을 강점하려는 적을 저격한 최초의 사건이 이곳에서 일어났고 독립군단을 편성한 곳이 미주다. 조국에서 버림받았던 가난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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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조선국민 군단
1914년8월29일 국치기념일. 하와이 오하우섬 가할루 지방 아후마두 사탕수수 농장에는 약6백 명의 한국인들이 모인 가운데 뜻 깊은 기념식이 열렸다. 이름하여 대 조선 국민군단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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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백년」의 주역들(9)최초의 하와이 이민|머슴·학생·망명객에 스님까지 끼어
1903년 1월13일 미국상선 겔릭 호는 하와이 오하우 섬 호놀룰루 항에 닻을 내렸다. 이 배에는 인솔자인 2명의 통역을 비록, 남자54명, 여자 21명, 어린이 25명 등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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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놀룰루」시의 한인양로원 찾아|초기에 이민 온 할머니들을 만나
하와이 호놀룰루 시 릴리하가 1526번지 한인양로원. 1929년 고 이승만대통령이 설립한 이곳은 미 주 유 일의 한인양로원으로 현재 27명의 노인이 살고 있다. 이중 20명이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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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물포
인천이 1일부터 직할시가 되었다. 인구 1백8만명으로 전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다. 인천이 역사의 기록에 등장한것은 「삼국사기」백제본기에 미추홀(미추홀)로서다. 고구려의 시조 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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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8)|한미외교 요람기(4)-윌러메트대 입학
하와이에서 이승만 박사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도 그 때의 장면이 뇌리에 선할 정도로 큰 감명을 남겼다. 이 박사는『지금 우리민족의 앞 길어 암담한 것처럼 보이나 곧 미국이 일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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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TV외화
□…TBC-TV 『하와이 이민선』(토·밤10시40분)=원제 the hawaiians 1870년대 중국 난민들의 「하와이 개척을 그린 영화. 개척에 따른 인간의 의지·갈등·사랑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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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이민 75년 "이젠 미국인 부럽지 않다"|생존 1세 교포 4명이 말하는 「어제와 오늘」
1903년1월13일 한국최초의 이민선 「켈릭」호가 「하와이」사탕수수밭 노동자 1백1명을 「호눌룰루」 항구에 내려 놓은지 만75년이 지났다. 대부분의 교포1세는 이미 작고, 현재1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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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이민
그 날, 인천부둣가에는 동이 트기 전부터 가지각색 옷차림의 장정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교인·학생·시골선비·광무군인·농촌머슴·막벌이 역부….모두 1백21명. 모두가 똑같은 대한제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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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 이민 70년|그 애환을 되새겨보는 특별기획(3)
눈물겨웠던 초기「하와이」이민의 생활. 1905년 25세의 나이로 「하와이」행 이민선을 탔던 한 청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함경도 길주 태생의 이 청년은 13세에 소련 「블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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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7)|비극의 이민사…꾐에 탄 노례선|현장 취재…70만 교포 성공과 실패의 자취|멕시코=김석성 순회 특파원
멕시코의 「티화나」에 사는 3백여명의 멕시코 교포 중 최고령자는 올해 83세의 공덕유 할아버지로서 그는 살아 있는 멕시코 이민사이기도 하다. 작달막한 키에 아직도 온 종일 활동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