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6년만의 "여보세요…"

    우리 나라와 소련간의 국제전화 개설직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17의2 유미자씨(51)가 모스크바에 사는 여동생 유금자씨(38)와 감격의 첫 통화를 나누었다. 유씨 자매는 일본 규우슈에

    중앙일보

    1979.04.25 00:00

  • 소, 「파라셀」군도 공격준비설|중공-베트남전 개입기미|극동 예비군에 동원령|미소주력함 인지해상서 대치

    중공군의 「베트남」 침공 2주째를 맞은 지난 주말 양국군의 전투는 더욱 치열해졌으며 소련의 개입징조가 점차 뚜렷해지는 가운데 중공은 25일 홍하삼각주의 평원으로 군대를 진격시키지

    중앙일보

    1979.02.26 00:00

  • 소, 극동군 현대화에 열중

    【동경 22일 로이터합동】소련은 중소 분쟁이 증대함에 따라 극동 주둔 소련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이곳 서방 군사 및 외교 소식통들이 전했다. 소식통들은 중소 국경에 배

    중앙일보

    1978.08.23 00:00

  • 소, 태평양군사력 대폭증강

    【워싱턴1일 합동】소련은 지난10년간 태평양지역에 대한 그들의 군사력을 극히 치밀한 계획아래 대폭 증강함으로써 특히 동북「아시아」지역평화에 큰 위협이 되고있다고 군사문제전문지「코맨

    중앙일보

    1978.08.02 00:00

  • 소, 시베리아 주둔군 계속증강

    【홍콩15일AFP동양】소련은 최근 태평양함대의 전력강화와 아울러「시베리아」주둔 군사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다고「홍콩」의 시사주간지「파-이스턴·이커노믹·리뷰」가 최근호에서 보도했다.

    중앙일보

    1978.06.16 00:00

  • 소는 가상적국|일, 1∼2개사 공격도 침략으로 규정

    【동경=김두겸 특파원】「이또」 일본방위청 방위국장은 일본 정부의 「방위 계획의 대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한정적이고 소규모적인 침략」의 구체적인 병력 규모를 처음으로 제시, 『공정

    중앙일보

    1978.04.08 00:00

  • 중공 접경에서 소군 기동 훈련

    【모스크바 5일 AFP동양】소련은 5일 최고회의 간부회 의장 겸 공산당 서기장 「레오니드·브레즈네프」가 69년도의 대규모 중소유혈국경 충돌지역인 「아무르」강 국경도시 「하바로프스크

    중앙일보

    1978.04.06 00:00

  • 소, 신문기사 우주중계 8천㎞밖에서 인쇄배달

    소련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신문기사를 모스크바에서 머나먼 극동지방까지 중계, 독자들에게 신속히 신문을 배달하고 있다고 소련의 한 신문이 보도. 이 신문에 따르면 모스크바에서 발간되

    중앙일보

    1978.03.27 00:00

  • 북괴 노동자 수 천명 시베리아서 벌목일

    소련의 「모스크바」 방송은 6일 오지 「하바로프스크」의 변경 지대에 위치한 벌목 공장에서 수 천명의 북한 벌목공 기계공들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벌목 공사에 종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앙일보

    1977.09.08 00:00

  • 한숨도 얼어붙는 시베리아-귀순 이홍보씨가 폭로한 죽음의 강제노역장

    『영하45도의 시베리아 강제노역장에서 죽어 가는 동료를 보며 자유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지단8월 사선을 넘어 귀순한 전 북괴 개성시 여객사무소 자동차 정비공 이홍보씨(4

    중앙일보

    1976.11.11 00:00

  • "쌀 한말 암시세가 석 달 월급분"

    지금 북괴평양에는 엄격한 동화관제가 실시되고 있고 지방주민은 평양에 여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쌀 한말 암시세가 일반 노동자의 3개월 월급에 해당하는 2백원(약5만원)이라고 일

    중앙일보

    1976.10.09 00:00

  • "북괴 정책은 친 중공 70%"

    22일 상오 중공을 돌아보고 방한한 미 하원 공화당 소속 외무 위원 「폴·핀들리」 의원을 맞아 정일권 국회 의장은 『북괴는 64년도까지 친소 70%, 친 중공 30%의 외교 정책을

    중앙일보

    1975.08.22 00:00

  • 30년 막혔던 사연에 벅찬 기대|공산국과 우편물 교환 발표…사할린·만주 등 교포 연고자들

    소련 등 14개 비적성공산국가와 오는 9월1일부터 직접 우편물을 교환한다는 정부발표가 나오자「사할린」이나 옛 만주지역(현 중공)에 친척들이 있는 연고자들은 금새 그들의 생생한 소식

    중앙일보

    1974.08.03 00:00

  • (45)|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입소 이후의 2대 김일성

    야부 토벌대에서 끝까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을 추적했던 장도공작대장은 그 김일성의 얼굴도 경력도 잘 알면서 그 김일성과 북한의 김성주가 동일인물인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말하기를『

    중앙일보

    1974.07.29 00:00

  • (30)그 전설·실존·도명을 밝힌다|항일 연군과 소련|이명영 집필(성대 교수 정치학)

    동북항일연군의 행군대형은 언제나 일렬종대였다. 눈 내린 겨울 같은 때는 모두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밟아 꼭 한사람이 왔다간 것 같이 위장했다. 뿐만 아니라 맨 뒷사람은 일부의 신

    중앙일보

    1974.06.17 00:00

  • 조국에 돌아갈 날만 학수고대|화태억류 한국교포문제연구소장의 현지르포

    「사할린」한국인교포들의 최근 소식이 처음으로 사진에 찍혀 소개되었다. 허허벌판 철책 속에 갇혀 강제노동을 해야하는 딱한 소식이 일본인 여행자들에 의해 알려졌다. 일본인 「와까사·게

    중앙일보

    1973.10.12 00:00

  • (9)동완|U대회대표단임원 동완 교수 방소 수기|「크렘린」1948년과 1973년

    결사적 싸움은 끝났다. 단장 이하 임원·선수들은「레닌」경기장에 소련·미국 국기와 나란히 게양된 승리의 태극기를 쳐다보며 삶의 보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하루를

    중앙일보

    1973.09.07 00:00

  • (6)동완|U대회대표단임원 동완 교수 방소 수기

    배구경기의 첫날「이란·팀」과의 대진 때였다고 기억한다. 5척을 겨우 넘을까말까한 작달막한 키에 하얀 안색, 꽤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청년이다. 나이는 22∼23세로 보인다. 경

    중앙일보

    1973.09.04 00:00

  • 빨리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

    【동경=박동순특파원】「사할린」의 「토마리」에 살고있는 한국인 허조·정구소씨 부부가 「사할린」억류동포귀환협회 박노학 회장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에 보낸 탄원서가 지난 3일 일본에 도착

    중앙일보

    1973.08.08 00:00

  • (690)내가아는 박헌영

    박헌영이 경성고보를 다니고 한참 장성할무렵인 1917년께부터 1920년대에걸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한국에 대해서는 아주 격동적인 몇가지 계기가 생겨났다. 한가지는 「러시아」

    중앙일보

    1973.02.21 00:00

  • (610)제28화 북간도(30)

    한인들이 노령에 이주한 것은 극히 오랜 역사가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1884년에 한·노 통상수호조약이 체결되었을 때 이주한 한인에 대한 국제조항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한인들의

    중앙일보

    1972.11.15 00:00

  • (601)|북간도(21)|이지택

    1918년께 부터 북간도에선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지하인쇄물이 많이 나왔다. 그중 특기할 것은 대한독립신문·조선독립신문과 조선국민 보·자유의 종·「우리들의 편지」등 5가지이다. 독

    중앙일보

    1972.11.04 00:00

  • 조총연 기자 5명 판문점에 나타나

    이날 판문점엔 재일조총련계 기자 5명이 똑같은 감색「싱글」을 입고 나왔다. 그들 중 단장이라는 이형구는 『재일조선통신사 사장이며 경기도시흥에서 나서 해방전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중앙일보

    1972.08.29 00:00

  • 「사할린」서 37년 만에 돌아온

    굶주림과 추위에 맹수위협도 겹쳐 귀국 때 북괴 마수 뿌리치느라 진땀. 「사할린」은 이제 생각하기도 싫소.』일제의 징용으로 남화 태탄광에 끌려갔다가 37년 만인 지난 8월 15일 꿈

    중앙일보

    1971.12.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