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계원 전비시서실장“박정희 시해는 우발적 범행”
"최규하 (崔圭夏) 전대통령은 10.26사건 직후 청와대에서 내가 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해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위증을 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 1979년
-
12.12 5.18관련자 검찰진술 요지-全씨의 越權
◇全씨의 월권적 행태=많은 12.12사건 관련자들이 검찰진술에서 全씨의 지나친 정치적 야심과 월권적 행태를 꼬집었다. 노재현 국방장관은“鄭총장 연행 재가후 국방부로 돌아와 있을때全
-
12.12 5.18재판 11차공판 지상중계
12.12및 5.18사건 11차공판이 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金榮一부장판사) 심리로 열려 장세동(張世東)씨등12.12관련 피고인 6명에 대한 반대신문과 전두환(全斗煥)
-
5.18수사 발표요지-全斗煥사령관 집권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운영=崔대통령은 군으로부터 계속된 비상기구설치에 대해 긴급조치의 발동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으며 필요하다면 현행법규 테두리안에서 연구해볼 것을 지시했다
-
寒波속의 조직개편
3共말 신민당(新民黨)총재대행을 지낸 향만(香晩)이충환(李忠煥)옹은 언변이 좋은 재사(才士)다.박정희(朴正熙)대통령 사망후 최규하(崔圭夏)씨가 대통령권한대행에 올랐을 때 香晩은『崔
-
대통령그늘에 가려 빠듯한 운신 폭
노재봉 청와대비서실장의 총리취임으로 국무총리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대통령중심제 아래의 국무총리란 그 역할이 천차만별이다. 어떤 때는 특정사안의 처리를 위해 총리를 1회용으
-
전씨 국회증언 질문초안 요지|광주특위
◇10·26사건에 대한 입장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10·26%관여 여부 △최규하 대통령권한 대행으로 정국을 끌어갈 수 있다고 보았나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것 △10·26 당
-
실록 80년 서울의 봄(31)|10·26후의 학생운동|「위장결혼 사건」…학원민주화 점화
10·26사태로 유신체제의 중심이 무너졌을 때 정부당국이 염려한 것은 엄청난 소요의 가능성이었다. 부마사태의 여파가 더 크게 소용돌이친다면…. 이래서 전국에 계엄을 선포하고 대학엔
-
실록 80년 서울의 봄|정부-국회 서로다른 개헌구상
80년 서울의 봄이 보여준 특징의 하나는 정치권의 분산이다. 어느면에서 힘을 분산한 것은 야당이기보다는 도리어 집권세력이라고 해야할지 모른다. 그 해 봄 최규하정부의 구상은 어느
-
실록 80년 서울의 봄(21)새 질서 예고…한남동의 총성-12·12의 서울 표정
12·12사태가 대통령선거의 뜨거운 쟁점의 하나가 되었다. 12· 12사태의 당사자인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의 민주당 입당이 7년11개월전의 어느 한밤으로 우리의 기억을 되돌려 놓고
-
"정총장 연행해 용퇴건의 하려했다"|유학성 민전의원이 말하는 「12·12사태」
12·12사태는 한마디로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을 공정히 수사해가는 과정에서발생한 불상사였다. 정승화씨는 분명히 내란방조행위를 했다. 10·26발생 순간인 밤7시40분쯤 정총장은 김
-
6인이 대책논의… 대통령 윤허는 뒤에받아 동원병력 4∼5천명… 출동지시는 내가 했다
(일문일답)-이번 회견이 당의 공식입장이냐, 유의원 개인입장이냐. 『12·12에 관련된 최고 선임자로서 진상을 국민에게 소상히 해명하고 설명하려는 것이다.』 -정총장이 당시 세번이
-
(16)손발 안 맞는 여권|당정관계-공화내부"삐그덕"
그 해 봄 김대중씨의 사면·복권과 함께 야당도 경쟁의 폭풍권으로 들어갔다. 야당도 라고 말하는 것은 이미 정부·여당권이 그런 폭풍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윤년인 80년2월29
-
(14)80년의 두 김 경쟁|각기"당""재야"거점 조직확대
야당의 대통령후보 단일화가 멀어져 가는듯이 보인다. 김영우 총재는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느냐는 이미 결론이 났다고 말한다. 김대중 고문은『김 총재도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지만
-
(14)계엄사령관 교체|노 국방-정 총장팀 돌연 무대서 퇴장
80년 서울의 봄은 평온 속에 출발했다.10·26전야 정치적 대립은 최악의 선을 넘어서 있었고 사회적 불안도 폭풍권에 다가가는 듯이 보였다.10·26은 이 모든 불안의 먹구름을 걷
-
(13)「당혹」서 지지|"미국은 정국변화를 「현실」로 수용"
지난 봄이래 미국은 한국의 정치발전에대한 관심을 훨씬 공개적으로 표시해봤다. 그 무렵 서울에 부임한 신임 「릴리」미 대사는 전임자와 달리 야당을 비롯한 재야각계 지도자와 접촉을 넓
-
실록 80년 서울의 봄 "폭력으로 정부전복 기도 한다기에…"
박대통령의 메모 80년 서울의 봄은 안개정국으로 불렀다. 최규하 대통령 정부는 안개속에서 출범했다. 그 봄이 안개속의 모색에 맴돌다 끝난것은 최규하 과도정부의 한계였을지 모른다.
-
정치관계 일지
1.12 북한, 한국요인에 보낸 편지에서「대한민국」호칭 처음 사용 18 최규하 대통령, 연두회견서 남북총리회담 제의 24 신현확 총리, 북한 이종옥에게 보낸 편지에서「조선민주주의
-
(4) 대통령 선거
내년 3월 이전에 실시될 대통령 선거는 5천명이 넘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선이라는데 특징이 있다. 정부 수립 후 11회에 걸친 대통령 선거 중 직접 선거가 5번이고 간접 선거 6번을
-
과도기 막 내려『새시대』로|새「파워·엘리트」등장, 체제개편|정치일정은 작업시간 늘어나 대폭단축 어려울 듯|과감한 개혁…「복지」에 큰 비중
-오늘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통령선거로 11대대통령이 탄생했습니다.11대지만 사람으로는 다섯번째 대통령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작년의「10·26」사태이후 지금까지의 10개월은
-
전두환장군을 대통령후보로
통일주체국민회의는 19일 서울세종문화회관에서 경기·강원지역 대의원을 위한 통일안보보고회를 열었다. 경기·강원지역 대의원들은 보고회에 이어 박충동대통령권한대행과 전국무위원및 국보위분
-
외교정책 변함 없어|미일 등에 사전 통보
외무부는 16일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과 박충동 국무총리서리의 대통령권한대행 승계사실을 전 해외공관에 긴급 타전, 주재국 정부에 통보했다. 외무부는 최대통령의 사임 성명과 박충동 대
-
「위기 관리 체제」서「국가 보위 체제」로
작년 5·16사건으로 졸지에 막을 열었던「최규하 시대」는8월16일의 하야로 홀연히 막을 내렸다. 헌법 제48조에 의해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지 2백95일, 지난해 12월6일 10대
-
최대통령 일지
▲79년 10월26일=10· 26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 서거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 취임. ▲11월10일=시국에 관한 특별담화를 통해『새 대통령은 현행헌법에 규정된 잔여 임기를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