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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씨개명, 반 년 새 1만6천 호서 320만 호로

    창씨개명, 반 년 새 1만6천 호서 320만 호로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 길에 가장 먼저 시동을 건 것은 조선 총독 미나미 지로였다. 미나미는 중일전쟁 직후 식민지 한국을 병영(兵營)으로 만들었다. 그 뒤를 따라 일본 본토의 ‘민

    중앙선데이

    2013.02.10 00:01

  • 창씨개명, 반 년 새 1만6천 호서 320만 호로

    창씨개명, 반 년 새 1만6천 호서 320만 호로

    1935년 5월 이회영의 아들 이규호(李圭虎:이규창)는 엄순봉(嚴舜奉:엄형순, 일제에 사형당함)과 함께 상해의 친일파인 조선거류민회 부회장 이용로(李容魯)를 처단하다가 국내로 끌

    중앙선데이

    2013.02.09 01:21

  •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3·1운동 1년 후

    [이덕일의 고금통의 古今通義] 3·1운동 1년 후

    이덕일역사평론가1919년 9월 2일 신임 총독 사이토 마고토(齋藤實)가 부임하러 남대문역(현 서울역)에 도착하자 만 64세의 청년 노인 강우규(姜宇奎)가 폭탄을 던졌다. 사이토와

    중앙일보

    2012.03.02 00:29

  • 교육권 뺏은 일제, 민족사학 1217곳 중 1175곳 퇴출

    교육권 뺏은 일제, 민족사학 1217곳 중 1175곳 퇴출

    일제의 한국학생 교육 장면, 일제는 ‘조선교육령’에서 충성스럽고 양순한 신민을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규정했다. [사진가 권태균 제공] 식민통치 구조④ 교육 장악일제는

    중앙선데이

    2011.10.01 23:45

  • 21편의 詩만 남긴 이한직

    21편의 詩만 남긴 이한직

    1976년 7월 14일 일본 도쿄의 한 병원에서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이한직 시인의 타계 소식이 전해졌다. 젊은 세대에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이한직은 1930년대 후반에서

    중앙선데이

    2009.11.01 00:17

  • 친일행위자 7명 토지 41억어치 국가 환수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는 28일 전원위원회를 열고 이진호 등 친일 반민족 행위자 7명 소유의 토지 20필지(30만8388㎡·시가 41억원·공시지가 28억원 상당)에

    중앙일보

    2008.02.29 01:44

  • 우리문화재 말살 지시 일제때 공문 공개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정책적.제도적으로 말살하려 했던 사실을보여주는 총독부.전북경찰부장등의 공문이 처음 공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鄭良模)은 2일 조선총독부 학무국장이 경무국장

    중앙일보

    1996.12.03 00:00

  • (4521) 경성야화-제86화

    1936년이었던가 나는 초선어학회에서 개최한 10월 28일의 한글날 기념식에 참석해 우연한 기회에 도산 안창호의 연설을 듣게되었다. 그날에는 각 신문사 기자들이 초청되어 조선어학회

    중앙일보

    1991.10.14 00:00

  • (14)친일국책영화「너와나」제작|임 영

    닝하영태낭이라는 일본이름으로 일본인 행세를 하던 허영은 그가 일본으로 밀항(?)해 일본영화계에서 각본·조감독·기획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다 16년 만인 1941년 조선으로 돌아와『

    중앙일보

    1990.07.22 00:00

  • (13)일 감독협에 한국인 10명 입회

    1938년 6월21일자「키네마순보」에는 조선 감독10명이 일본감독협회에 입회하기로 결정되었다고 적혀 있다. -일본감독협회에 조선의 성봉영화단, 조선영화 등의 전속감독「10명이 입회

    중앙일보

    1990.07.15 00:00

  • 드라머|시루떡 빚어 인섭 마중가는 김씨

    김씨는 소방훈련에서 상으로 탄 쌀로 시루떡까지 만들어 인섭을 마중 나갈 준비를 한다. 용산역에 도착한 김씨는 경찰의 검문에 걸려 떡 보따리를 빼앗겼으나 총독부 학무국장을 지낸 오빠

    중앙일보

    1985.06.13 00:00

  •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제81화 30년대의 문화계(168)-민족말살정책

    남총독은 신사참배를 거부했다해서 1937년 9월 광주의 숭일·수피아학교, 목포의 정명·영흥학교를 폐교시키고 이어 순천의 매산, 담양의 광덕학교를 폐교시키고 교장인 선교사를 추방하였

    중앙일보

    1985.02.22 00:00

  • (3) 정문기

    전남순천시의 은성학교(현 매산국민교) 졸업반때의 일이다. 하루는 서울에서 「세끼야」(관야)라는 학무국장이 학교시찰을 왔다. 그는 줄지어 서있는학생들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면서 걸어오

    중앙일보

    1982.12.21 00:00

  • (3039)제72화 비규격의 떠돌이 인생

    서울서 가까운 몇몇 시골농촌을 찾아다니면서 보통학교 다니는 학동들의 실정을 내 눈으로 보았다. 비오는 날 우산을 받고 등교하는 놈은 열에 하나가 드물다. 책보를 겨드랑에 끼고 비

    중앙일보

    1981.02.17 00:00

  • (2965)제71화 경기 80년

    한일 합방이후 경기는 한국교육의 총본산으로 발돋움했다. 합방직후인 1910년 10월11일에는 수학원학생을 경성고보의 해당학년에 수용했다. 수학원은 원래 영친왕 이은의 교육을 담당하

    중앙일보

    1980.11.14 00:00

  • (2604)|제65화 불교 근세 백년 (38)|유교 법회|강석주

    1937년 총본산의 사원을 한창 짓고 있는 8월에 선학원에서는 유교 법회라는 선객들의 모임이 열렸다. 이 법회는 전국의 유수한 선장들이 모여 10일간 계속 했는데 모이게 된 동기가

    중앙일보

    1979.08.21 00:00

  • (2590)불교근세백년 -강석주|중앙교무원

    총독부 학무국장이 다녀간 다음날인 1922년1월13일, 주지회의에서 유신회원 강신창 스님은 30본산 연합사무소 위원장이자 종무원 원장인 홍포룡 스님과 김일운(유점사) 이혼성(봉선사

    중앙일보

    1979.08.04 00:00

  • (2589)불교근세백년 -강석주|조선불교총회

    유신회원들은 조선불교총회를 계기로 일거에 강력한 통일기관인 총무원을 세우고자 하였으나 30본산 대부분의 주지들은 총무원이 총독부의 인가를 받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므로 차차

    중앙일보

    1979.08.03 00:00

  • (2587)불교근세백년 -강석주|종무원 설치

    l920년에 시작한 불교청년회의 유신운동에 자극을 받은 불교계는 어떠한 형태로든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강력하게 통할하는 기관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당시 월정사 주지 홍포

    중앙일보

    1979.08.01 00:00

  • (1396)전국학련(제47화) 나의 학생운동 이철승(8)

    만일 그때 내가 중국으로 탈출했더라면 오늘날의 내운명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탈출이지 당장 울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형편에 중국으로 망명하는 것은 더욱 큰 일이 아닐

    중앙일보

    1975.07.24 00:00

  • (247)제자는 필자|제17화 양화초기(11)

    예나 지금이나 신인발굴을 위한 공모전에는 심사위원이 항시 말썽이다. 개인적인 정실과 작품에 대한 기호가 심사에 작용되는 까닭이다. 선전 초기에는 일본 화단의 이른바 권위를 형성하

    중앙일보

    1971.09.02 00:00

  • (10)부산내성국민학교|「국치」듣고 칼갈며 분개

    학생13명으로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생은 모두 일본인. 삭발한 머리에 「게다」를 신고 일본옷을 입은 차림새가 신기했다. 벽에걸린 흑판과 인쇄된 교재 책상과 의자를 갖춘 교실모습도

    중앙일보

    1968.06.22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