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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사극『설중매』 끝낸 극작가 신봉승씨
『「설중매」가 그처럼 대단한 인기를 모으리라곤 전혀 예측하지 못했읍니다.』MB C-TV 대하정통사극『조선왕조5백년』의 극작가 신봉승씨(53)는 드라머 성공의 이유를▲사료의 신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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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실록 읽어보고 싶었는데
□…MBC-TV『조선왕조 오백년』(21일 밤10시15분)=「뿌리깊은 나무」. 태종 공정대왕실록 서른여섯권이 완성되자 세종은 자신의 아버님의 치적을 기록한 것이니 머리맡에 두고 읽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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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TV 드라머대폭교체
MBC-TV드라머가 대폭 바뀐다. 22일로 막을 내리는 주말연속극『저별은 나의별』(홍승연극본·박철연출)을 시작으로 아침드라머『새댁』(유호극본·정문수연출), 일일극『시장사람들』(이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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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사극, 원작소설의 표현에 너무 얽매여
○…KBS제1TV의 대하드라머 『개국』이나 MBC-TV의 『조선왕조 오백년』같은, 정사에 바탕을 두고 꾸며지는 사극을 보면 우리 TV문화수준도 상당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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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침략의 제물|발굴자료와 새증언으로 밝히는 일제통치의 뒷무대
조선왕실 최후의 사람들은 민족과 아픔을 함께 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족의 한을 깊게 만들기까지 했다. 그 표본이 영친왕으로 일컬어지는 최후의 왕세자 이은이다. 이은의 일본화 과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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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사극 복식등 사실과 동떨어져
요즈음 사극수준에서 보면 고증문제는 사증의 이해나 판단차이에서 생기는 게 아니고 신분의 상징이나 시대분위기 등 기성관념을 떨쳐내지 못한데 있는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든다. ①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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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은산별신제 인간문화제-이어인 할머니(89세)
『첫 치국을 잡으시니 경상도 경주는 진부대왕치국이요 두번을 잡으시니 전라도 전주는 공명왕의 치국이요 세번을 잡으시니 충청도 부여는 백제왕의 도입이요. 네번을 잡으시니 평안도 평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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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영일정씨
-이몸이 죽고 죽어/일백번 고쳐죽어/백골이 진토되어/넋이라도 있고 없고/임 향한 일편단심이야/가실줄이 있으랴. 시비선악(시비선악)이 온통 뒤섞여 거센 탁류로 흐르는 난세, 포은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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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담양 전씨|제자: 초정 권창륜
「무엇을 대대로 전가해야할 것인가. 충효와 인의와 예절이 아니던가. 인간에 무슨 보물이 이보다 더 할 손가. 세상 사람이 고루 써도 바닥 나지 않을 것을…. 공과 세만 믿다보면 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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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기를 맞는 한-미 관계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두 나라의 수교 1백주년이라는 계기를 빌 것까지도 없다. 한국은·미국의 방위공약에 안전보장을 크게 의존하고 있고 미국은 4강의 이해가 마주치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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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백년」의 주역들|신미양변과 「로저즈」제독|「강화상륙」과 「인천상륙」의 기록
한·미 수호초약체결을 계기로 한 한·미 관계가 내년으로 수교1백년을 맞는다. 「로저즈」제독의 「포선외교」로 막이 오른 한·미 관계가 「우방」으로 그 위치를 굳히기 까지는 그야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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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군 축내리 삼정부락|만5천 가락 4색 왕골로 청·황용이 춤추는 용문석를 엮는다
완초피를 l만5천 개가 돗틀로 이어지면 청용·황용이 하늘로 오르고 쌍학이 너울너울 살아 춤춘다. 지열이 이글거리고 불볕이 쏟아 부어지는 한여름. 삼베고쟁이에 대청마루에 발을 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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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전 직전에 제 모습을 찾은 완당 김정희선생 고택
한국이 낳은 최대의 서예가이며 보학자이기도 한 완당 김정희선생 (1786∼1856) 의 고택이 1백23년만에 비로소 일부나마 제 모습을 되찾게 됐다. 충남 비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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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천년을 이어온-민족의 슬기 (19)|매천 황현과 절명시
구한말 일제가 조선 침탈 야욕을 노골화하자 망국을 지켜보고 있던 이 땅의 지식인들은 대략 네가지 길을 택했다. 가장 많이 택한 것은 의병. 유인석·최익현·민종식·신돌석 등 전국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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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대 토론…우리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율곡 이이와 한국 사상의 맥락
국사상 수많은 위인과 명사들 가운데서 가장 우뚝한 세분으로 우리가 세종대왕·율곡 이이 선생·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꼽는다면 아마 한국 사람으로서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이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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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출신의 투박한 서풍 40점|간송 박물관서 오원 장승업 전
이조 후기의 대표적 화가인 오원 장승업의 진적을 보여주는 『오원전』이 간송 박물관 (서울 성북 국민교 옆)서 열리고 있다 (16일까지). 작고한 간송 전형필씨의 방대한 고 미술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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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노비 문서전
우리의 역사에 평민·노비의 역사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모든 사서가 양반계급에 의해 기록된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 착안하여 조선시대의 노비문서를 모아 그 전횡과 압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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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8)|골동품 비화40년(9)-왕서방과 이서방
일본인 호리꾼이 한창 발호할 때 개성의 풍덕 일대는 마치 벌집 구명이 나듯 숭숭 뚫려버린 것은 지금까지 얘기한 것으로 미루어 그리 놀랄 일은 못된다. 그렇게 해서 고려자기가 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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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기로세련계회도
미술 2천년 전의 회화 부문은 도자기나 조각·공예품에 비하여 그리 괄목한 것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숨어 있던 새로운 작품의 소개가 없다. 비록 원화를 볼 기화가 없었더라도 도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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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광화문
1392년. 30년동안 고려의 신으로서 공을 쌓은 무인 이성계는 무혈혁명으로 정권을 얻어 「조선」 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는 아직 구세력이 뿌리깊게 남아있는 개성을 하루바삐 떠나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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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형사 제도의 연구」|서일교씨
이조 5백년간, 최지은 자를 다스리던 제도와 그 운영의 실례를 한데 모아 체계화한 「조선왕조 형사 제도의 연구」가 서일교 법제처장에 의해 저술되었다. 한문 원전의 인용문과 주가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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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물을 처음 소개한 실학의 선구 지봉 이수광
조국 근대화의 여명기 인물로서 먼저 들어야 할 이는 지봉 이수광이라고 생각한다. 지봉은 이씨 조선의 건국자인 이성계 태조의 8대 후손으로서 이씨 왕조 성립 후 꼭 2백년만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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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에 비추어본-병오년의 역사
미신 같은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병오년은 말띠인지라 좋든 나쁘든 어쩐지 순탄치 못한 연운 같기도 하다. 이같이 전제하고 근세 우리 나라 역사를 들추어 볼 때 거금 60년 전의 병오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