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우리나라 좋을 씨고…-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가며…생각해 본 것들

    내가 앉은 바로 맞은편 좌석에 30대 중턱의 젊은 부부가 어린 두 남매와 같이 타고 있다. 건실하게 보이는 남편, 눈망울이 반짝이는 슬기롭게 생긴 아내, 다섯 살쯤인 아들과 서너

    중앙일보

    1981.01.01 00:00

  • 중공교포 부부 61년만에 귀국

    중공에 살던 김동훈씨(84)부부가 61년만에 꿈에도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몸이 불편해 「휠·체어」에, 의지해 「롤링·브리지」를 나온 김씨는 『조국이 이렇게 발전한 줄은 몰랐다

    중앙일보

    1980.12.30 00:00

  • 사병들의 어머니 노릇 26년-만기 전역하는 박재수 상사

    『굿바이·미스터·칩스』-. 떠나는 제대병이나 보내는 고참상사나 헤어짐이 아쉬워 잡은 손을 놓을 줄 모른다. 사나이끼리 맺은 정이 영하의 연병장을 덥혀주는 중부전선 최전방 육군279

    중앙일보

    1980.12.29 00:00

  • 중공 교포 친척 찾아 달라 편지

    중공에 사는 한인 교포가 40여년 전에 헤어진 서울의 친척들을 애타게 찾고 있다. 중국 대련시 서초구 월생리로 91호에 사는 박용구 (59) 이순애 (56)씨 부부는 일제 때 헤어

    중앙일보

    1980.12.22 00:00

  • 연구 여건 불가·대우 충분치 않지만|꾸준한 연구로 적잖은 업적

    정부는 과학기술 개발과 경제 개발의 지속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해외 과학두뇌를 유치할 방침이다. 지난 68년 과학기술처가 조경철 박사(경희대 부총장)등 5명의 과학자를 최초로 유치

    중앙일보

    1980.11.06 00:00

  • 「작은소망」이룩한 이태규박사

    백발의 노안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소) 고문직사임과 함께 사택을 비우라는 통고를 받고 지난 60여일동안 수심에 잠겨 밤잠까지 설쳤던 원로과학자이태규박사(

    중앙일보

    1980.11.04 00:00

  • KIST고문맡아 73년부터 몸담았던 사택

    펑생을 과학발전에 헌신해온 한 원로과학자의 「조그마한 소망」을 풀어 줄길은 없을까 한국과학기술연구소 (KIST) 고문직에서 물러나는과학의 세계적권위인 이태규박사.(79)는 고문직해

    중앙일보

    1980.10.31 00:00

  • 15년만에 조국서 가야금 독주회

    한국의 원로 국악인으로 지난 74년 「하와이」 이민을 떠난 남도시나위의 인간문화재 지영희씨(80년2월「하와이」에서 작고)와 가야금산조의 성금??씨(59)부부의 맏딸인 지성자씨(39

    중앙일보

    1980.08.29 00:00

  • "지혜모아 난국극복"

    중앙청 영결식 상오9시55분 영정을 모신 선도차를 앞세우고 고박대통령의 유해를 안치한 운구차가 중앙청 동편문을 통해 영결식장에 들어섰다. 3군 조악대의 조악이 울러 퍼지는 속에 운

    중앙일보

    1979.11.03 00:00

  • |중앙일보 창간 14돌 기념 특별기획 의식조사를 읽고|최선영(시인·고려대 강사)

    중앙일보의 연재 『재미한국인들』-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흥미있게 읽었다. 2천1백92명의 재미교포를 상대로 한 실태조사의 결과는 미국을 가보지 못한 이들에게, 혹은 앞으로 이민을

    중앙일보

    1979.10.13 00:00

  • 체면보다 실리|검은황금의 지배자들

    신참산유국 「리비아」는 71년 석유가격인상과 이익배분협상에서 거인들을 차례로 넘어뜨렸다. 「리비아」에 진출해 있던 「무서운 쌍동이」「소칼」과 「텍사코」는 옛날의 위세당당하던 그런

    중앙일보

    1979.03.31 00:00

  • 남북대화재개위해 두 번째 접촉

    【?문?=김영배 기자】남북조절위 서울측대표와 평양측의 「조국전선」대표가 2월17일 접촉에 이어 7일상오 판문점중립국 감독위원회회의실에서 2차 접촉을 가졌다. 2차접촉에도 1차때와같

    중앙일보

    1979.03.07 00:00

  • 중공교포 일가 8명, 52년만에 조국 품에 &홍콩에 도착…서울 아들과 국제전화

    중공에서 52년간 살아온 한국인 이응씨(80·천진시 화평구 중경도45) 한가족 8명이 한국으로의 이주 신청을 한지 14년만에 중공 당국으로부터 출국 허가를 받아 지난 23일과 26

    중앙일보

    1979.02.26 00:00

  • 남북한 직통전화 재개키로|남북한대표 판문점서 1년여만에 대좌 1시간33분

    【판문점=성연욱기자】남북한대표간의 접촉이 17일상오10시 판문점에서 25차 남북적십자실무회담후 1년2개월만에이루어졌다. 판문점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만난 회담에 서울측에서는 조

    중앙일보

    1979.02.17 00:00

  • 서울측 대표 민관식·함병춘·정홍진·이동복씨로 결정

    계대변인은 또 『판문점접촉을 계기로 조절위의 운영이 정당화되어 남북대화의 재개를 갈망하는 5천만 민족의 염원에 부응할수있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12일 서울측이 17일상

    중앙일보

    1979.02.16 00:00

  • 「민족통일준비위」 결성 위한 북괴대표선정 일방발표

    【서울=내외】북괴는 한국측의 남북한당국간의 회담개최제의에 여전히「책임 있는 회답」을 보내오지 않은 가운데 12일 상오 또다시 이른바「조국전선」서기국명의의「보도」라는 것을 발표하고

    중앙일보

    1979.02.12 00:00

  • "민간 사절로 국위 선양하라"|박 대통령, 아주 파견 의사 부부들 접견

    박정희 대통령을 14일 하오 3시 청와대에서 특별 휴가차 일시 귀국한「아프리카」파견 의사 일행 8명을 접견하고「가봉」주재 정장진씨 등 5명에게 수교훈장 숙정장을 주었다. 박 대통령

    중앙일보

    1978.12.15 00:00

  • 이색 공약에 박수와 폭소도…|합동 연설 회장…이런 얘기 저런 얘기

    속초에서 정일권 후보 (공화)는 첫 강연에 나서 『기호도 1번, 연설도 첫번째, 이름에도 일자가 들어 있으니 1등으로 뽑아달라』고 했고, 성동의 양일동 후보 (통일)는 그 지역에서

    중앙일보

    1978.12.04 00:00

  • 「미국의 소리」(제60화)

    한국동란이 터진 50년6월25일일요일 새벽은 「뉴욕」시간으로는 토요일 오후였다. 주말이라 당직근무자만 남고 모두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직원에게 비상소집령이 떨어졌다. 사무실로

    중앙일보

    1978.10.30 00:00

  • 재일동포 단오 성묘단

    재일동포 단오절 모국방문단 제4진 48명이 7일 하오KAL기 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 모국 땅을 밟았다. 「나고야」(명고옥)에 사는 이들은 모국을 다녀왔던 친지들의 권유를 받고 가

    중앙일보

    1978.06.07 00:00

  • 역광선

    쌀값상승에 행정적 제동. 호랑이보고 창구멍 틀어막기로. 노총, 최저임 4만8천원. 무려 대졸초임의 반의 반 이나. 이응노부부 망명요청. 이미 버린 조국 확인하는 절차만. 정전 잦은

    중앙일보

    1978.02.10 00:00

  • '77의 정치…이런 말 저런 말

    「적선지가 필유여경, 적악지가 필유여앙」-박정희 대통령은 연두 기자회견에서 북괴의 마약밀수사건에 언급, 이 같은 속담을 인용. 박 대통령은 법무부 연두순시(2·4)에서 자유 제한

    중앙일보

    1977.12.24 00:00

  • (3)미술

    77년의 미술계는 중진급 화가들과 소장「그룹」의 전시회 「러시」 속에 양적인 풍성함을 보여주었으나 질적인 면에서는 두드러지는 전시회가 드물었던 한 해였다. 그러나 뛰어나게 내세울

    중앙일보

    1977.12.16 00:00

  • (5) 유일한 자원「물」서 힌트…「발전기」로 유럽정복 스위스의 BBC

    동북부「스위스」의 공업도시「바덴」의 상오 7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한 중년신사를 만났다. 『「스위스」의 부를 취재하고있는 중앙일보특파원들입니다』고 인사를 청하자 『바로 오늘

    중앙일보

    1977.04.15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