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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프린스턴대 핵융합연구소 구인광고 본 순간 “바로 이거다”
23살에 박사 학위를 받은 나는 1963년 남플로리다대 물리학과 조교수로 부임했다. 지금 기준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당시 기준으로도 상당히 어린 나이에 대학에서 가르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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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유학 따라온 여친과 23세에 결혼 … 해너 총장이 장학금 선물
1960년 3월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 도착해 자격시험을 치른 뒤 시작한 물리학과 박사과정은 63년 8월에 끝났다. 2년여 동안 과정을 공부한 뒤 그해 3월에 시작한 학위 논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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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세계 최고 원자력공학 대학 키운 해너 총장, 나의 롤모델이 됐다
1970년대 리처드 닉슨 행정부에서 미국 국제교류처(USAID) 처장으로 일하던 시절의 존 해너 미시건 주립대 총장. 1941~69년 총장을 지내면서 작은 농대를 과학기술 연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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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혹독했던 유학생 시험, 소련에 인공위성 뒤진 게 이유
소련이 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로 쏘아올린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의 모형. 미국 워싱턴의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전시물이다. 그 직후 미국은 소련에 추월당한 과학기술을 따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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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내가 뽑은 예상문제 적중률 80%…시험지 받자마자 소름이
정근모 박사가 경기고 1학년 때 대학입학 자격시럼에서 수석을 한 뒤 학생 잡지인 '학원'에 기고한 공부 방법. 핵심을 짚고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적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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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대학, 책 20권 나눠주고 “한 달 뒤 시험” … 낙제 두려워 잠 설쳐
정근모 박사가 1960년 유학간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그해 입학식에서 해리 트루먼 전 미 대통령(가운데)이 축사를 하고 있다. 맨 오른쪽이 존 해너 총장이다. 트루먼은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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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과외 제자의 누나였던 여친, 내가 탄 비행기 보며 남몰래 눈물
1960년 개장한 김포국제공항 종합청사. 정근모 박사는 60년 3월 이곳을 통해 가 유학길을 떠났다. 당시로선 최신 시설이었다. [국가기록원]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수료한 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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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과학자 되지 말고 한국 과학기술의 문익점이 돼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958년 10월 1일 미 우주항공국(NASA) 출범 뒤인 59년 1월 의회에 나와 연설하고 있다. 뒷줄 왼쪽은 당시 부통령이던 리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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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가난한 나라 과학자는 인생 걸고 조국 잘살게 해야”
김법린 초대 원자력 원장의 지적대로 중국의 첫 노벨상 수상자인 리정다오(李政道·92)와 양전닝(楊振寧·96)은 시카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에 남았다. 대만으로 옮긴 중화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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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김법린 원장, 내가 미국 유학길 오르자 ‘두뇌유출’ 우려
중국 최초 노벨상 수상자들이 중일전쟁 시기 공부했던 전시 피난대학인 서남연합대 정문. [중앙포토] 김법린 원자력원장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내게 중국인 최초 노벨상 수상자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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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유학 직전 중국인들이 노벨물리학상 …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삶의 본보기' 김법린 원장의 충고 나는 대학 2학년 때 부친을 여의었다. 이 때문에 20대 초반에는 가장 고마운 스승으로 모셨던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과 신태환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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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철학자 출신 김법린, 묻고 확인하는 리더십으로 이공계 인재 이끌어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은 이미 3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분으로 학문뿐 아니라 인격도 훌륭했다. 국내외에서 일제에 항거한 항일 독립투사 출신이기도 하다. 20대에 그런 분을 지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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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인턴으로 간 원자력원 … 거기서 ‘인생 멘토’ 김법린을 만났다
1959년 행정대학원 진학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공계 학생이 행정대학원에 간 것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의 배려로 장학금을 얻어 물리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을 가게 됐으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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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물리학 신동, 행정대학원 수석’ 기사에 이승만 “장학금 줘 유학 보내라”
김법린 초대 원자력 원장과의 깊은 인연을 말하려면 우선 20대 시절의 고뇌부터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서로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1959년 초 서울대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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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독립운동 하듯 기술 확보하라” 독립투사 김법린에게 원전 개발 맡겨
1959년 1월21일 원자력원 설립에 이어 2월 3일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공덕리(현 서울 공릉동)의 당시 서울대 공대 4호관에서 문을 연 원자력 연구소 개소식 장면. [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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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력난 도움 준 시슬러, 이승만에게 “원전 만들 인재 50명 유학보내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전인 1948년 발생한 5·14 단전 사태는 내가 오랫동안 관여해온 전력 분야에선 깊은 ‘트라우마’였다. 미국의 전력선과 국내 전력설비 확충으로 겨우 위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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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전력 92% 보유 北, 1948년 5월 갑자기 전기를 끊었다
미국의 전력선 자코나호가 해상에서 발전한 전기를 육상에 공급하는 모습. 48년 부산항에 투입됐던 이 선박은 55년 미군 점령 하의 일본 오키나와로 옮겼다. [위키피디아]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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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美박사 들고온 우라늄 상자···이승만의 눈빛이 반짝였다
1959년 7월 14일 한국 최초 연구용 원자로의 기공식 장면. 이승만 대통령이 첫 삽을 뜨고 뒤에 김법린 초대 원자력원장이 서있다. [사진 정근모 박사] 내 사무실의 자리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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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美, 원전설계도 먹칠후 줘···70년대 울분이 한국원전 낳았다"
두 차례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정근모(79) 박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과학기술 행정가다. 만 23년5개월이던 1963년 2월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응용물리학으로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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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최연소 박사 유효정 “학원 싫어 중·고·대학 독학”
유효정 박사는 젊지만 수도승 같은 연구자다. 인터뷰를 고사하던 유 박사를 어렵게 대전의 한 카페로 불러냈다. 그의 유일한 취미는 운동이다. 피트니스클럽에서 매일 2시간 반을 보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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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22세 국내 최연소 박사 탄생 "학원 싫어 대학까지 독학"
국내 최연소 박사 타이틀을 차지한 UST 유효정 씨. 연구 외엔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는 게 유일한 취미란다. 하루 2시간반을 운동한다고. '결혼은?'이라고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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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게 공개서한 보내는 원자력공학과 학생들
원자력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앞줄)과 시민들이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원전수출 국민통합대회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최승식 기자 "대통령님! 원전수출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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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과 신재생 함께 키울 수 있다…원전수출 국민행동, 21일 국민통합대회 개최
‘원전수출 국민행동(이하 원국행)’이 21일 오후 2시 서울 광화문에서 ‘세계로 원전수출, 하나로 경제성장’이란 슬로건 아래 국민통합대회를 연다. 원국행은 원전 산업 육성과 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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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 환갑 맞는 2031년엔 세계 10위권 대학 도약”
‘KAIST 2031 비전 선포식’이 20일 대전 구성동 KAIST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신성철 KAIST 총장(앞줄 오른쪽 8번째)과 정근모 전 과기처 장관(앞줄 오른쪽